그믐으로 가는 검은 달 / 이제니
꿈을 꾸고 있었다
구두를 잃어버린 사람이 울고 있었다
북해의 지명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일광의 끝을 따라 죽은 사람처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밤 전무한 추락처럼 검은 새는 날아올랐다
언덕에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는 사이
그 사이
흉터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의 손목에 그어진 열십자의 상처였다
한번 울고 한번 절할 때 너의 이마는 어두워졌다
쓸모없는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바닥에 앉아 꽃을 파는 중국인 자매를 보았다
모로코나 알제리 사람인지도 모르지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비밀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그것이 너 자신의 심장을 겨눌 때
거리의 싸구려 과육과 관용을 함부로 사들일 때
나는 그것이 네가 병드는 방식인 줄 몰랐다
말수가 줄어들듯이 너는 사라졌다
네가 사라지자 나도 사라졌다
작별인시를 하지 않는 것은 발설하지 않은 문장으로
너와 내가 오래오래 묶여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잊혀진 줄도 모른 채로 잊혀지지 않기 위함이디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할 수 있는 것은 하겠습니다
창문을 좀 열어도 되겠습니까
문이 잠겨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밤 우리는 둥글고 검은 것처럼 사라졌다
문장 사이의 간격이 느슨해지듯 우리는 사라졌다
누구도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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