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그믐으로 가는 검은 달 / 이제니

나뭇잎숨결 2023. 6. 11. 12:18

그믐으로 가는 검은 달 / 이제니

 

꿈을 꾸고 있었다

구두를 잃어버린 사람이 울고 있었다

북해의 지명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일광의 끝을 따라 죽은 사람처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밤 전무한 추락처럼 검은 새는 날아올랐다

언덕에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는 사이

그 사이

흉터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의 손목에 그어진 열십자의 상처였다

한번 울고 한번 절할 때 너의 이마는 어두워졌다

쓸모없는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바닥에 앉아 꽃을 파는 중국인 자매를 보았다

모로코나 알제리 사람인지도 모르지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비밀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그것이 너 자신의 심장을 겨눌 때

거리의 싸구려 과육과 관용을 함부로 사들일 때

나는 그것이 네가 병드는 방식인 줄 몰랐다

말수가 줄어들듯이 너는 사라졌다

네가 사라지자 나도 사라졌다

작별인시를 하지 않는 것은 발설하지 않은 문장으로

너와 내가 오래오래 묶여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잊혀진 줄도 모른 채로 잊혀지지 않기 위함이디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할 수 있는 것은 하겠습니다

창문을 좀 열어도 되겠습니까

문이 잠겨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밤 우리는 둥글고 검은 것처럼 사라졌다

문장 사이의 간격이 느슨해지듯 우리는 사라졌다

누구도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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