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연구와 현상학*
홍 성 하**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요 약 문
사회과학 분야 등에서 활용하는 연구방법론으로 양적인 방법과 질적인 방법이 있다. 실험이나 통계적인 분석이 중시되는 양적인 연구와는 달리, 질적인 연구는 현상학과 같은 방법을 응용하면서 이론의 개발을 목표로 한다. 19세기의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온 현상학을 방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질적 연구는 연구대상자의 주관적인 경험세계를 밝히고자 한다. 이는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경험의 의미나 본질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경험에 대한 논의는 후설의 후기 현상학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생활세계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활세계는 개념이나 이론에 의한 세계가 아니라 반성 이전의 세계로서 경험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상학은 경험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 연구의 출발점으로 어떤 전제나 선입견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기존의 믿음을 괄호로 묶어야 한다. 연구대상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확실하게 기술하기 위해 면담 등을 통한 자료수집과정을 준비하는데, 이때 면담은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괄호치기를 통해 판단중지를 수행한다는 것은 철학을 보다 엄밀한 학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엄밀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이 무전제성의 철학이며, 어떠한 전제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전제 없는 앎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 주요어 : 현상학, 질적 연구, 현상학적 운동, 응용현상학, 현상학적 방법.
1. 들어가는 말
사회과학분야와 교육학 그리고 간호학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연구방법론으로 양적인 방법과 질적인 방법을 꼽을 수 있다. 양적 연구가 실험이나 통계적인 분석, 표준화된 관찰연구 등이 그 핵심을 이룬다면, 질적 연구는 현상학적 방법론, 사례연구나 역사기록의 분석 등 다양한 학문분야로부터 그 방법론을 원용하고 있다. 질적 연구방법의 그 접근과정이 양적인 연구와 비교해 보면 주관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서 과학성이나 객관성과 관련된 물음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남아 있다. 하지만 질적 연구가 가설들을 설정하여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연구를 설계할 수밖에 없는 실증주의적인 견해와는 달리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자연과학주의나 물리적 객관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후설의 입장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다.
질적 연구가 현상학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수용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현상학의 외연적 확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학문적 풍토가 같은 분야의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담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성해 보면,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분야라고 생각하기 쉬운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학을 하나의 학문연구의 방법론으로 수용하는 것은 학제간의 연구를 가능케 하고 종합적 사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현상학을 질적 연구에서 응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현상학의 틀 안에서 보면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오해할 소지가 있다. 특히 이런 시도가 현상학의 순수한 철학적 의미를 변형시키고 단지 하나의 응용학문의 방법적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의 특성을 고찰해 보면 응용학문에서조차 순수학문의 본래적인 견해를 따라야 한다는 요구는 어찌 보면 학문적 교조주의의 발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응용을 한다는 것은 순수한 이론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으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이 각각 자기 영역에서만 머문다고 한다면 학제간의 연구나 사물이나 세계, 인간에 대한 종합적 고찰은 불가능할 것이다. 순수분야는 이론적 토대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고 응용학문은 이런 토대 위에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개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슈피겔버그의 말처럼 모든 응용현상학은 순수현상학의 확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이 논문은 학제간의 담론을 위한 첫걸음으로 질적 연구에서 많이 응용하고 있는 현상학 개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무엇보다 후설적인 의미에서 이 개념들을 해명함으로써 질적 연구에서 응용하고 있는 현상학 개념의 본래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질적 연구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여러 학문분야 중 간호학에서의 현상학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논하고자 한다.
2. 질적 연구와 현상학
가. 사태 자체에 대한 학으로서 현상학
주지하다시피 후설에 의해 창시된 현상학은 19세기의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 철학에 있어서 새로운 “탐구가능성”을 개시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이다. 여기서 현상학은 단순히 사물의 현상(Erscheinung)만을 인식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상론(Phänomenalismus)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후설에게 있어서 현상학이 “사태 자체에로(auf die Sachen selbst) 되돌아가려는” 학문이라면, 하이데거도 현상학의 구호를 “사태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라고 밝히고 있다. 두 철학자의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는 유사하지만 사태에 대한 이해는 차이가 있다. 후설에게 있어서 사태는 감각적인 현상이 아니라 순수의식을 일컫는다면,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사태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를 의미한다. 이처럼 후설과 하이데거 현상학이 모두 사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는 가장 근원적인 세계, 또는 원본적으로 주어져 있는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과연 어떻게 우리가 사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상학은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서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며 태도를 문제시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학을 방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질적 연구에서의 사태 자체는 연구대상자들의 경험세계를 의미한다. 경험은 감정이나 정서, 지각, 태도,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 보살핌의 기능이나 역할 등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질적 연구에서의 현상학은 어떤 상황에 처한 인간 경험의 의미나 본질을 밝히는 일종의 방법론으로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질적 연구에 관련된 논문들의 제목에서 경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의 세계를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연구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선입견 없이 연구대상자의 경험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이다.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 현상학은 무엇보다 무전제성(Voraussetzungslosigkeit)을 강조한다. 무전제성이라는 표현은 모든 전제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완전히 현실화될 수 없는 진술들을 엄밀하게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진술들을 배제하여 사태 자체에로 되돌아감으로써 현상학은 엄밀한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후설 현상학의 특징은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는 이념에 놓여져 있다. 철학이 무전제의 학이 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바로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이다. 자연적 태도는 우리가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세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취하고 있는 태도를 의미한다. 후설은 자연적 태도에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물이나 세계 존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이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을 괄호 치는 판단중지를 수행하도록 한다. 이러한 괄호치기와 같은 판단중지를 수행한다는 것은 철학을 보다 엄밀한 학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엄밀한 학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전제성의 학은 어떠한 전제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전제 없는 앎을 추구한다. 현상학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전제를 거부하는 엄밀한 학문은 절대 명증적인 제1의 원리에 관한 학문으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엄밀한 학문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는 “철학을 절대적으로 정초된 학문이 되도록 전면적으로 개혁”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나. 현상학적 운동과 응용현상학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이념을 추구하는 현상학에 대한 높은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면서 응용되는데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현상학적 운동이라 부른다. 현상학적 운동이라는 명칭은 후설의 저서인 ?논리연구?(1900/1901)가 발간된 후 괴팅겐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구모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런 초기 움직임은 이후에 후설이 재직하였던 프라이부르크를 중심으로 이어져 간다. 그러나 프라이부르크에서의 현상학적 운동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초기 괴팅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상학적 운동의 관심이 주로 현상학과 자연과학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프라이부르크 시기에는 현상학과 정신과학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정치적으로 상황이 악화되었던 후기에는 후설은 주로 현상학과 실증학문과의 관계를 탐구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후설 초기에 본질법칙이나 형식이 주로 다루어진 주제였다고 한다면, 후기는 학문들의 “선험적-역사적 생성”에 대한 문제를 천착하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30년대에 후설의 명성이 독일에서는 시들해진 것과는 달리, 미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점차 높아져 가면서 후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현상학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초기 후설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상학적 운동은 이후 하이데거, 셀러, 메를로-퐁티 등의 현상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현상학적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현상학적 운동은 다른 학문분야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심리학에서의 현상학 수용은 “현상학적인 관점들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이고 인간학적인 탐구로 종합하려는 시도”로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시도가 심리학뿐만 아니라 정신치료학과 교육학에서도 이루어지면서 현상학은 더 이상 순수이론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장에서 응용되는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띄게 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50-60년대에 미국에서 실존적이고 현상학적인 형식으로 행동주의와 정신분석학을 넘어서서 인본주의적 심리학과 대화치료법으로 대중화된다. 이밖에 현상학의 주위세계개념은 환경심리학에,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영역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현상학의 대중화는 순수현상학의 의미가 다양하게 희석되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현상학적 운동을 우리는 크게 순수현상학과 응용현상학으로 구분하게 된다. 순수현상학이 무엇보다 후설에 의해 창시된 현상학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응용현상학은 후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많은 현상학자들이 현상학적 방법론을 윤리학이나 미학과 같은 철학의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법학, 심리학, 종교학, 신학, 교육학, 간호학 등 다른 학문분야로 응용한 것을 말한다. 응용현상학이 순수현상학에 기여한 바는 무엇보다 현상학을 다른 학문과 연계시킴으로써 현상학을 대중화시킨 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응용현상학 또는 신현상학은 인본주의의 영향 아래 기존의 과학적 객관주의나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연구대상자의 경험세계를 근원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학문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이처럼 연구대상자의 주관적 경험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인본주의적 움직임으로서 현상학적 운동은 간호학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현상학이 간호학에 하나의 방법론으로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에 간행된 연구서적이나 논문들의 양을 보면 그 응용정도가 얼마나 활발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라틴어의 ‘양육하다’(nutrix)에서 유래하는 간호의 본질적인 내용이 돌봄이나 보살핌의 행위라고 할 때, 간호는 무엇보다 돌봄의 대상, 즉 환자나 그 보호자 등과의 만남이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이러한 인간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은 간호의 효율성 뿐만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의 신뢰를 얻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환자나 보호자를 보살피는 간호행위에 대한 연구는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수행되며, 이는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현상학의 이념을 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상학에서 말하는 사태 자체는 간호현상학에서는 연구대상자들의 경험, 즉 주관적인 감정이나 지각,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 등을 의미한다. 이는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경험의 의미나 본질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 현상학의 중심개념으로서 지향성
레비나스가 “현상학이 곧 지향성”이라고 했듯이, 지향성 개념은 현상학의 중심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상학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만 하는 개념이 지향성 개념이다. 지향성은 ‘-에 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모든 체험이나 정신적 행위는 그 무엇을 향하고 있다. 지각한다는 것은 ‘-에 대한 지각’이며, 기억한다는 것도 ‘-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질적 연구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경험 일반은 언제나 ‘-에 대한 경험’이다. 물론 질적 연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향성 개념은 후설적인 의미에서의 지향성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전자가 연구대상자를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주관적인 점이 더 강조된다면, 후자는 전통적인 철학의 과제인 인식주관과 그 대상과의 통일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질적 연구는 객관적인 실재에 접근하는 수단인 주관적인 이해에 비중을 두고 일상적인 주관적 경험들에 대한 기술을 통해 현상을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에, 지향성 개념은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와의 관계를 해명하는 계기가 된다. 즉 지향성의 원리를 통해 해명되는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간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탐구는 보살피는 행위인데, 보살핀다는 것은 섬기는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존재를 나누는 것이다. 이처럼 질적 연구에서의 지향성 개념은 타자에 대한 보살핌의 행위로 응용되면서 타자의 경험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우리가 질적 연구방법으로 이루어진 연구결과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는 경험이다. 예를 들면 “임상간호사의 근무지 이동경험”, “남자 간호사의 실무적응 경험”, “간호사의 임상실무 경험”이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경험이라는 개념을 흔히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empeiria)을 일종의 제작술(techne)로 이해하면서 실천과 연관시켜 설명한 이래로 경험에 대한 논의는 철학사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후설에게 있어서 경험을 주어진 것으로 말할 때, 흔히 경험론자들의 주장처럼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고 직관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궁극적 원천으로부터, 즉 스스로 보여지고 통찰된 원리로부터 이끌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하지 않고 주어지는 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설이 말하는 경험이다. 경험에 대한 논의는 후설의 후기 현상학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생활세계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활세계는 개념이나 이론에 의한 세계가 아니라 반성 이전의 세계로서 경험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상학은 경험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후설이 되돌아가고자 하였던 사태는 순수의식이며 이 순수의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지향성이다. 브렌타노의 지향적 내존(Inexistenz)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유래하는 지향적 대상은 브렌타노에게 있어서 내재적 대상이라면, 후설에게는 초월적 대상을 의미한다. 후설이 지향적 대상을 내재적이지 않고 초월적이라고 할 때 초월적이라는 개념은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의식은 상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의식행위와 그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의식대상이 의식하는 주관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행위를 넘어서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 행위와 상관관계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지각하는 행위, 기억하는 행위, 상상하는 행위 등등 우리의 모든 의식행위들은 항상 그 대상과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면 지각에 있어서 지각작용과 지각된 것, 기억에 있어서 기억작용과 기억된 것, 상상에 있어서 상상작용과 상상된 것, 즉 인식작용(noesis)과 인식대상(noema)이라는 관계로 모든 의식은 이루어져 있다.
3. 현상학적 방법
가. 질적 연구에서의 현상학적 방법
제니퍼 메이슨은 그의 저서에서 질적 연구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사회적 실체와 현상이 어떻게 해석, 이해되고 경험되거나 생성되는가라는 해석학적인 입장에 뿌리를 둔다. 둘째, 자료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융통적이고 자료가 창출되는 사회적 맥락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셋째, 분석과 설명방법에서 복합성과 세부사항, 그리고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어 그는 이러한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체계적이고 엄격한 절차를 지켜야 하며, 둘째, 설정된 연구전략에 따라 수행해야 하며, 셋째, 비판적인 반성이 있어야 하며, 넷째, 지적 궁금증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설명이 뒤따라야 하며, 다섯째, 이 설명이 일반적으로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며, 여섯째, 이 연구방법이 완벽하다고 간주해서는 안되며, 마지막으로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질적 연구방법은 연구현상의 의미를 발견하고 연구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하는 연구방법이다. 하지만 질적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연구현상에 대한 통찰력은 인과관계를 통해 수행되지 않고, 연구현상을 전체로서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무엇보다 이론의 개발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이론의 실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양적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양적 연구가 지금까지의 연구업적에 기초하여 측정 가능한 구체적인 현상을 다룬다면, 질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현상을 주제로 삼는다. 그러므로 질적 연구자는 연구대상자를 모든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변수들도 감안해야 한다. 현상학적 연구는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상정하여 이루어져야 하는데, 여기서 상황은 “분석과 기술과 해석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 속에 구체화되어 있는 의미들의 전형적인 중심점으로 기능한다.”
질적 연구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현상학적 연구방법 중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연구자의 연구태도라 할 수 있다. 질적 연구에서 자주 응용되는 현상학적 방법으로는 콜라이찌(Colaizzi)식 방법, 지오르기(Giorgi)식 방법, 그리고 반 캄(van Kaam)식 방법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방법은 연구자가 그 대상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반 캄은 그의 작업을 실존주의적이라고 표현한다면, 지오르기는 현상학적, 콜라이찌는 경험적 현상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양적 연구와는 달리 질적 연구는 연구대상자의 경험세계를 선입견 없이 기술하고자 시도한다. 여기서 선입견 없이 연구에 임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것이 현상학적인 방법이며 그 중 하나가 괄호에 넣기(Einklammerung)이다. 이는 연구의 출발점으로 어떤 전제나 선입견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기존의 믿음을 괄호에 넣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판단중지는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기검증”을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상학적 환원은 연구자가 연구주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가지고 있는 세계와 전제들을 괄호에 넣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현상학의 이념인 사태 자체로 나아가기 위해 제시되는 무전제성이 가능해지며 연구대상자의 경험 세계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지게 된다. 아무런 전제 없이 연구에 임할 때 연구대상자와의 면담을 통해 얻어낸 자료들을 주어진 그대로 기술할 수 있다. 여기서 기술한다는 것은 연역적 추론과 같은 방법이 아니라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연구대상자들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충실히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업무라 할 수 있다.
연구대상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확실하게 기술하기 위해 면담 등을 통한 자료수집과정을 준비하는데, 이때 면담은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 아닌 대화로서 대상자의 경험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자료수집을 하는데 있어서 연구자는 선입견 없이 연구참여자가 말하는 내용을 보고들은 그대로 수집해야 한다. 면담은 이미 계획된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자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연구대상자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며, 대상자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느낌을 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면담이 자유롭게 진행될 때, 연구대상자가 자기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동시에 연구자는 자신의 의견이나 질문을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연구자가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인내심이나 탁월한 의사소통능력이 요구된다.
연구자가 연구 대상자들이 진술한 경험 내용을 보다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연구대상자가 보여주고 제시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란 연구대상자의 생활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경험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설의 후기 현상학에서 제시되는 주관적인 경험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변경은 질적 연구에서 연구대상자의 주관적인 경험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변경과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질적 연구에서 현상학적 괄호치기를 통해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함으로써 대상자의 경험세계로 직접 나아가는 태도변경을 요구한다.
나. 판단중지와 현상학적 환원
앞에서 질적 연구에서 현상학적 방법의 특성을 간단하게 요약하였다. 이 장에서는 연구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수행하는 현상학적 방법을 후설 현상학의 틀 안에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후설 현상학이 순수의식으로 되돌아가고자 할 때, 이에 도달하는 방법이 현상학적 환원이다. 현상학적 환원을 좀더 세분해 보면 형상적 환원과 선험적 환원이라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형상적 환원은 우리의 시선이 사실의 영역으로부터 본질 영역에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의식대상과 관련이 있다면, 선험적 환원은 의식대상이 상관적으로 주어지는 의식작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형상적 환원에 의해 실제적인 대상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본질직관이 이루어지게 된다. 형상적 환원을 통해 파악된 본질은 재차 선험적 환원을 통하여 의식의 내재적 본질로 환원되며, 이 환원을 통하여 순수의식이 남게 된다.
후설에 따르면 순수의식 또는 순수체험은 현상학적 환원을 거친 후에 남게 되는 현상학적 잔여라 할 수 있다. 현상학적 환원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태도에서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확신과 함께, 그 대상으로 향하고 있던 우리의 시선을 의식작용이나 체험으로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이 객관적인 대상세계로 향하고 있는 한, 우리의 체험이나 의식작용은 그 자체로 의식되지 않고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대상으로부터 주관의 체험으로 되돌아가고자 시도하는 이유는 모든 체험이 지향적 구조를 지니고 있고 체험의 주관이 그 체험대상에 지향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소박한 객관주의로부터 선험적 주관주의로 철저하게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현상학이 탐구하는 의식현상은 우리의 체험 속에 남아 있는 순수현상, 바로 환원된 현상이다. 순수현상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현상학적 환원은 엄밀한 학문을 구축하고자 하였던 후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바로 엄밀한 방법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자연적 태도에서 받아들인 믿음을 배제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판단중지를 해야 한다. 자연적 태도에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물이나 세계 존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이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을 괄호 치는 판단중지를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세계는 실제로 현존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순수자아와 지향적 관계가 있는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태도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여기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설 현상학에서의 세계에 대한 이해다.
이러한 괄호치기를 통해 판단중지를 수행한다는 것은 철학을 보다 엄밀한 학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엄밀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이 무전제성의 철학이며, 어떠한 전제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전제 없는 앎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불분명한 전제에 의존하고 있는 자연적이며 일상적인 태도를 거부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현상학은 판단중지를 통해 자연적 태도에서 의식초월적인 대상으로 향하던 우리의 시선을 의식내재적인 세계로 되돌리며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앎을 추구한다.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에서 환원을 통해 되돌아간 선험적 순수의식은 의미부여의 장으로서 절대적인 근원적 영역이 된다. 모든 존재의 구성원천이 되는 주관은 인식의 궁극적인 원천에로 되물어 가는 현상학적인 태도에서 그 선험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선험적 주관성으로 되물어간다는 것은 한편으로 후기현상학의 주제가 되는 근원적인 생활세계에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활세계로부터 이 세계 자체가 발생되는 선험적 주관성의 작용들로 되물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선험적 주관성은 객관적인 대상들을 구성하고 그 근거인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주체다.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도달한 세계는 선험적 주관성의 세계이며 이러한 방법을 통해 외부대상으로 향하던 우리의 시선은 의식내재적인 세계로 돌려지고 명증적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후기 후설에게 있어서 생활세계로의 환원은 의식에서 구성된 세계가 아니라 신체적으로 직접 체험하는 세계로의 환원을 의미한다. 우리는 판단중지와 환원과 같은 태도변경을 통하여 자연과학이나 실증과학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주관적인 경험세계에로 되돌아가게 된다. 경험세계는 바로 생활세계를 의미하며 우리가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세계로서 선논리적이고 선이론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태도에서 체험하는 세계인 생활세계는 자연과학주의나 객관주의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과학적 사고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당연시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지각의 세계를 은폐시키고 그 위에 이념의 옷을 입혀 자연과학적 세계로 나타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판단중지를 통하여 세계가 상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세계적 환원을 통하여 경험적 세계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후설에 따르면 객관적인 학문들이 그 의미토대가 되는 경험세계를 망각하여 학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주의적인 태도는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이 근원적으로 생활세계적인 경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처럼 선논리적이고 선이론적인 생활세계로의 환원은 질적 연구에서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되돌아가고자 하는 연구대상자의 주관적 경험세계를 의미한다. 이 세계 안에서 연구대상자가 경험한 내용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주어진 그대로 기술한다는 것은 현상학의 근본정신과 유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4. 간호학에서의 현상학적 방법
이 장에서는 질적 연구에서 응용하고 있는 현상학적 연구방법을 간호학과 연관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방법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하는 두 편의 논문은 ‘산후우울증의 경험’과 ‘간호 실무에서의 유머’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두 편의 논문제목에서 현상학적 연구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연구는 콜라이찌식 방법을 원용한 것이다. 현상학적 방법을 통한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산후우울증이나 유머의 의미를 찾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후설이 의미의 근원인 순수의식을 밝히고자 하거나 하이데거가 존재의미를 해명하고자 하려는 시도는 간호학에서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대상자의 경험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경험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연구대상자의 경험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통찰력은 연구현상을 인과적이고 분석적이 아니라,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방식으로 얻어지게 된다.
이는 양적 연구가 정형화되고 범주화된 설문지에 의존하여 진행된다고 한다면, 질적 연구에서의 현상학적 방법은 연구대상자의 생생한 경험을 자유롭게 기술하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예를 들면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산모들이나 간호업무 중에 유머들을 경험한 간호사들이 이런 경험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들을 자유롭게 개진하도록 한다. 이런 방식으로 연구한 결과에 대해 연구자 스스로 신뢰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료 수집과 분석 전에 연구자가 연구 현상에 관한 어떤 전제나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선입견을 버릴 수 없기에 일단 후설적인 용어로 괄호 속에 넣게 된다. 즉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산후우울증이나 유머에 대해 그 동안 교육이나 임상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괄호 속에 넣고 그것만이 이런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판단중지를 통해서만 연구대상자가 기술한 산후우울증이나 유머에 대한 경험내용을 있는 그대로 수집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은 분석과정을 통해 의미에 따라 주제별로 분류한다.
이러한 자료분석의 과정은 더 이상 순수 현상학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응용현상학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자료를 분석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은 수집한 자료로부터 주제나 범주를 이끌어내는데, 이 자료가 연구책임자의 선입견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 수집한 자료가 정확한지 연구참여자와 함께 확인함으로써 그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 중에 보다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의문이 생길 때마다 대상자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을 들어야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질적 연구에서의 현상학은 해석학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해석학적 현상학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방법을 도입한 이유는 “연구중인 현상의 경험을 정확하게 서술하기 위한 것이지 이론이나 모델을 만들어내고 일반적인 설명을 전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현상학적 연구를 통해 산후우울증이나 유머 경험에 대한 의미를 밝히게 되고 이를 토대로 산후우울증과 유머에 관련된 양적 연구 문항을 개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현상학적 방법을 응용하는 질적 연구가 통계적 분석에 의존하는 양적 연구와 완전히 분리되어 사용되는 방법이 아니고 양적 연구를 위한 방법론적 토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일종의 학제간의 연구를 위한 시도로써 질적 연구와 현상학과의 관계를 논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순수학문들이 현실적인 생활세계와 격리되어 이론적으로만 공허하게 전개될 수 있고, 반면에 응용학문들이 이런 철학적 이론을 깊은 성찰 없이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논문은 질적 연구에서 현상학이라는 개념을 본래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동시에 질적 연구에서 현상학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수천 년의 역사동안 철학이 학문의 기초로써 그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최근에 이르러 위기를 맞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한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사회현상과 맞물려 있다. 실용성과 오락성 등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면서 철학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지 않고 아직도 순수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였던 철학의 책임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본다. 현상학이 태동한지도 어언 100년이 넘어섰다. 한동안 유행처럼 현상학적 운동으로 번진 현상학에 대한 높은 관심은 최근에 들어와서는 매우 정체된 느낌을 준다. 이는 현상학 내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철학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상학이 그 태동지인 독일에서조차 많은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현상학을 전공한 교수를 독일 대학내에서 찾기란 매우 힘들어졌으며, 이런 현상은 학문 후속세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현상학을 전공하는 경우들이 급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방법적으로 “새로운 노선(Richtlinien)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에서의 현상학 쇠퇴와 비교해 보면 미국과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현상학에 대한 관심은 현상학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가치 있는 부분은 바로 현상학이 다른 학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응용되고 있는 점이다. 질적 연구방법론으로 수용되면서 다양한 학문분야로 확산되어 가는 응용현상학은 현상학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게 되고, 이는 순수현상학의 의미를 새로이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상학이 단지 현상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는 폐쇄적 학문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분야와의 지속적인 담론을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고, 다른 의미에서 현상학적 운동이 재현될 수 있다. 질적 연구가 현상학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수용하고 응용한다는 것은 적어도 현상학의 이념이 무엇이고 현상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지평에서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현상학적 방법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현상학에 대한 이해 없이 현상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치 기초 없이 변형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두섭 역, ?질적연구방법론?, 나남출판, 서울 1996.
신경림 역, ?질적 간호연구방법?, 이화여대, 서울 1997.
신경림, 안규남 역, ?체험연구?, 동녘, 서울 1994.
정혜경, 홍성하, 「간호학에서의 질적 연구방법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철학과 현상학연구? 제18집, 철학과 현실사, 서울 2002.
조용환, 「질적 기술, 분석, 해석」, ?교육인류학 연구? 제2권 제2호, 서울 1999.
M. Heidegger, Prolegomena zur Geschichte des Zeitbegriffs, Frankfurt a. M. 1979.
, Sein und Zeit, Tübingen 1972.
E. Husserl, Cartesianische Meditationen und Pariser Vorträge, Den Haag 1950.
, 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erstes Buch, Den Haag 1976.
, Logische Untersuchungen 1, (Hua XIX/1), The Hague 1984.
, Zur Phänomenologie der Intersubjektivität, Dritter Teil, Den Haag 1973.
E. Levinas, En découvrant l'existence avec Husserl et Heidegger, Paris 1988.
C. Marshall, Designing Qualitative Research, Thousand Oaks 1995.
H. Schmitz, Neue Phänomenologie, Bonn 1980.
H. R. Sepp (Hrsg.), Edmund Husserl und die phänomenologische Bewegung, Freiburg / München 1988.
H.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The Hague 1970.
E. W. Straus(ed.), Phenomenology: Pure and Applied, Pittsburgh 1964.
R. Tesch, Qualitative Research: Analysis Types and Software Tools, New York 1990.
B. Waldenfels, Einführung in die Phänomenologie, München 1992.
Zusammenfassung
Qualitative Untersuchung und Phanomenologie
― Hong, Seong-Ha ―
In meiner Arbeit mochte ich die qualitative Untersuchung und die Phanomenologie thematisieren und analysieren. Ziel dieser Forschung ist es zu explizieren, wie die Phanomenologie auf die Methode der qualitativen Untersuchungen angewandt werden kann. Im Gegensatz zur quantitativen Methoden, in der das Experiment und die Statistik eine große Rolle spielen, wird die qualitative Untersuchungsmethode als eine subjektive gekennzeichnet. Diesr Versuch orientiert sich an der Entfaltung der Husserlschen Phanomenologie in die qualitative Untersuchungsmethode.
Aus einer grundlichen Kenntnis der Phanomenologie und der qualitativen Untersuchung versuche ich, diese Thematik zu erweitern. Zuerst werde ich einen allgemeinen Uberblick uber die Struktur der Phanomenologie geben. Mit der Auslegung der Grundbegriffe, z. B. Einklammerung, Ausschaltungen, Epoche und die phanomenologische Reduktion, werde ich den Blick auf den Grundstruktur der qualitativen Untersuchung freigeben.
※ Schlagworter : qualitative Untersuchung, Phanomenologie, phanomenologische Bewegungen, angewandte Phanomenologie, phanomenologische Methode.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석학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 (0) | 2021.11.16 |
---|---|
후설의 {수학의 철학}에 있어서 수개념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0) | 2021.11.16 |
언어철학적으로 살펴본 정신과학의 의미 (0) | 2021.11.16 |
역사-비판적 관점에서 해명된 폴 리쾨르의 주체성 복원의 전략 (0) | 2021.11.16 |
현상학의 잠정성과 지속성 (0)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