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 이성복, 시 <편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중.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는 엄청난 체력 소모가 동반되며 ‘미워하는 마음’ 자체는 ‘미워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그 마음’과 다투는 일이 같이 진행된다. 또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신의 미운 마음’과 계속 대치 중이어야 한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형용 모순’이다. 죽도록 다시 보기는 싫은데 또 죽도록 다시 보고 싶은 이상한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벌어진다. 꼴도 보기 싫은데 제발 한 번만 봤으면 하는 모순들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잘 있지 말아요”, 라는 말과 “그립다”라는 말은 사실 결이 전혀 다른 언어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말이 결합해서 이상하게 아름다운 문장이 탄생했다. 아마도 사랑하는 와중에 있는 사람의, 아마도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듯한 사람의, 어쩌면 이제 막 이별을 감행한 사람의, 그것도 아니면 야속하게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이 이상한 발화가 포함된 시 구절은 이성복의 <편지> 중 마지막 문장이다.
“잘 있지 말아요”, 라는 말에는 당연히 ‘나도 잘 못 지내고 있으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너’는 어쩐지 내가 없으면 더 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네가 밉다. ‘나’는 네가 없으니 이제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밉다. 내 마음은 전쟁터가 되었다. 은유로써의 전쟁이 아니라 마음과 또다른 마음들이 서로 육박전과 살육전을 벌이는 실재의(real) 전쟁터가 되었다.
스스로 지은 감옥이 가장 나가기 어려운 법이고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 중단하기에 가장 어려운 법이다.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이 진창의 마음은 그런데 누가 어루만져 줘야 하나. 나는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고 찾을 생각도 사실 없다. 없는 것을 찾는 마음 때문에 어떤 마음은 또 아파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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