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축복은 축복을 빌어주는 이에게 돌아간다.

나뭇잎숨결 2009. 5. 10. 23:59

 

언어는 땅과 같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때문에 소설을 읽고 시를 읽고 또 언어로 사상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언어 폭력이 있듯, 언어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이의 인격, 즉 축복이 담겨 있다. 축복의 역설은 축복하는 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이 언어가 지닌 주술적인 힘이다. 반사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바로 언어다. 타인에게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가는 결국 그 자신의 삶의 방향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21세기북스)’의 저자 존 오도나휴는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자, 시작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1월 미국 최초 흑인대통령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는 버락 오바마를 위해 메릴랜드 주 주지사인 마틴 오말리는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 책에 실린 ‘현명한 힘(A Blessing for one who holds power)’으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선 그를 축복했다. 이처럼 진정한 축복이란,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들의 출발점에서 앞으로 내달리게 하는 삶의 동력이다. 또한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누구에게든지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특별한 선물이다. 또한 매일매일 낯선 곳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서 있는 현대인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로 만들어주는 안내자인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축복의 말은 시작, 욕망, 출발점, 귀향, 마음, 소명 그리고 저 끝 너머까지 인생 여정의 일곱 주기를 따라간다. 일곱 챕터는 산문과 시가 서로 호응하고, 마지막은 잃어버린 축복의 미를 회복하는 시적 에세이, ‘완전한 치유를 위한 기도’로 끝난다. 특별한 상황과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글들은 ‘선물’로서의 축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축복이 가져다주는 치유와 변화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존 오도나휴의 또 다른 저서 <영혼의 동반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무엇인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지혜로운 대답을 해주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때때로 너무 냉소적이고 진부해 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틀과 판에 박힌 생활을 깨고, 자신이 삶을 사는 이유를 찾아 깊이 들어가고픈 열망을 지니고 있다. 켈트 족은 이런 열망에 훌륭히 대답한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안에 지니고 있는 비밀스러운 우주, 우리가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이들과 관계, 그리고 우리가 우리 밖에 창조해내는 것들에 반영되는 세계의 산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역할의 노예가 되어 간다. 그러나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완전해지는 것은 자주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는 삶에 완전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변화를 친근하게 느끼는 순간, 우리는 노예의 상태에 벗어나게 될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만을 갈망하는 바싹 말라붙은 불모의 사막에서 축복은 신선한 우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이를 축복하는 힘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요. 축복을 기원할 때는 주변의 공기가 바뀝니다. 보이지 않지만 사랑 어린 친절이 가득한 곳에서 비롯된 풍성함이 우리 가슴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축복의 빛과 그 경건함 속에서 사람 또는 어떤 상황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빛납니다. 죽어 있던 벽에 새로운 창문이 열리고 칠흑 같던 어둠속에 희미한 빛이 반짝이며 길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상처로 고통 받는 가슴에는 아침이슬 같은 치유의 손길이 와 닿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풍성한 영혼의 유산이 이렇게 풍부한데도 걸인처럼 헐벗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일까요. 우리 영혼 속에 사는 조용한 영원은 너무도 고요해 포착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축복을 하면 그 조용한 영원이 솟아나 우리를 감싸고 키워줍니다. 서로를 축복하는 법을 배웁시다.
                                                                                                                                                               - p6, 서문 중에서

 

 



산 너머 높은 곳으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언덕에서 본 풍경보다 훨씬 넓은 시야를 가지길 바랍니다.

 
길이 진부하고 지루하며 우울한 시간을 감내해야 할 때 상상력을 발휘해 계속해서 새로운 지평을 일깨우길 바랍니다. 
                                                                                                                                        

                                                                                                                                                   __ p166, ‘현명한 힘’ 중에서

삶에는 항상 축복이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축복하고, 축복받으며 살고 있다. 아침에, 식사 전후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하루를 보내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의 순간 속에 있다.
축복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치유하고, 힘을 강화시켜주는 에너지다.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지혜를 수확하는 아름다운 작업이며, 두려움의 대상을 도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는 힘이다. 축복은 축복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축복받는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하다. 더 이상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는 삶의 중요한 시점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용기를 주며 인도해주는 의식이 우리에게는 없다. 어떤 경계를 넘어설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축복의 언어’다. 축복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고, 새로운 경험의 지형과 그 속을 뚫고 지나가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축복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작업이었음을 고백한다.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우리가 거쳐야만 하는 막연한 변화의 영역, 그 마음 깊은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였던바, 그것이 결코 녹록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작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걱정하고, 현재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바로 지금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너그럽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축복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또한 사람과 상황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축복의 힘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그 가능성으로 많은 것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더 이상은 나의 꿈을 미루지 않기 위해 , 하지만 마지막에는 내가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하고 더 이상 내 가슴이 두려움에 소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 오늘 나 용기 가지길 바라네

                                                                                                                                                      - p23, ‘아침 헌정’ 중에서

지금은 누군가는 자비로워져야 할 시간, 사색과 상처를 극복하고 친절함을 나누며 , 확신에 찬 손길을 뻗길 기원하니 , 사랑의 잔을 꺼내 메아리 없는 폐허를 지나 조심스럽게 옮기길 바라네., 이 겨울의 순례가 당신을 봄의 입구로 인도할 때까지 

 
                                                                                                                                             - pp53-54, ‘사랑의 상처’ 중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얼굴은 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운명이 어떤 식으로 꼴 지어질지는 사실상 알 수가 없다. 우리 운명의 대본은 비밀스럽다. 운명의 대본은 계속해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사건의 이면 뒤에 숨어 있다. 우리의 삶은 마음의 불빛이나 단순한 질문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아무튼 삶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존재하길 바란다. 태곳적부터 이어진 이런 사실을 감지하고 믿는다면, 가슴속에서 넘치도록 풍성한 신뢰의 샘을 열 수 있다. 그러면 두려움을 던져버릴 수 있고 우리의 삶은 무한한 발견과 독창성 그리고 연민을 찾아가는 항해가 된다. 출발점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 그것은 초대이고 약속이다. 그 초대와 약속이 무엇이든 삶의 성찬식은 우리에게 펼쳐질 것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혜가 우리를 축복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 p67

그대 주변의 빛이 줄어들 때
그리고 그대 몸이 두려움에 돌처럼 차갑게 변하는 것처럼
생각이 어두워질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고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다 무너질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와 그대 마음에 명령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대의 세계를 어둡게 만드는
그 생각을 다잡아보기 바라네.
                                                                                                                                                     - p126 ‘용기의 불꽃’ 중에서

지금은 잔인하지만
그 이면 깊은 곳에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어
성장을 위해 더 큰 부름을 들을 줄 아는 지혜를 선사하고
겸손하게 용인할 줄 아는 어려운 일을 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지금 감내하고 있는 실망감에
감사하는 날이 있었다고 회상하는 날이 올 겁니다.
- p135 ‘실패에 대한 감사’ 중에서

은혜와 지혜로
친절하게 행동하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네.

비판을 수용할 줄 알고
자신을 모든 일의 중심에 세우지 않으며
오만이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행동하길 바라네.
                                                                                                                                              - p178 ‘지도자를 위하여’ 중에서

시인들은 종종 우연히 ‘거저 얻은 시’를 쓰게 될 때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는 어렵고 힘들게 끝없이 고치고 고쳐 완성되는 반면, 이 ‘거저 얻은 시’는 말 그대로 저절로 쓰인 시다. 축복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거저 얻은 축복’이 있다. 우정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예이츠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야 하는 유일한 호의가 우정이라고 말했다. 친구가 해주는 축복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정이 조성하는 사랑과 이해가 훈훈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삶의 뿌리를 박고 완전한 인간으로 꽃핀다. 친구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곳에 있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들의 너그러운 영혼 덕분에 우리가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건강이 주는 축복이 있다.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삶을 자축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렇게 그냥 얻는 축복에는 우리 삶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선물, 마음속에 잠자고 있지만 결코 의심하지 않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축복은 축복을 빌어주는 자에게로 돌아간다.  

 

 

 

 


"영혼의 동반자를 켈트 인들은 '아남 카라'라고 불렀다. '아남'은 고대 아일랜드 어로 '영혼'을 뜻하며, '카라'는 동반자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유럽 대륙 전역에서 커다란 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민족이 있었다. 유럽인들 대부분이 그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을 정도로 유럽은 한때 그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유럽의 원주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일랜드의 시인 다르키 맥기이는 그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 천 년 하고 또 천 년 전에, 안개 낀 공간 너머에 강력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 군대의 창보다 몸집이 컸으며, 떡갈나무와 탑보다 더 큰 신의 은총을 받았다. 사슴보다 날래고, 땅의 정령들보다 지혜로웠다. 바람과 파도가 이 현자들의 집이었다."

그들은 바로 켈트 인들이다. 켈트 인들의 정신에 다시 불이 지펴진 것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들어와서부터다.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 유럽의 중심 문화였던 켈트 문화는, 하지만 막연히 드루이드 교와 스톤헨지로 상징되는 '신비주의'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 오늘날 켈트 인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것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대지와 연결된 삶의 방식과 그들이 지닌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이자 철학자 존 오도나휴는 켈트 인들이 지녔던 생을 대하는 지혜를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 책《영혼의 동반자ANAM CARA》를 통해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이 세상에서의 허약한 인간의 삶에 대해 힘겨워하던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라는 벽을 넘어서 그들의 지혜를 우리말로 옮겨낸 이는 시인 류시화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명상서를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온 그가 이번에는《영혼의 동반자》를 번역했다. 류시화는 특유의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을 통해 켈트 문화의 정수라고 할 만한 '오래된 혼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현대인들의 굳게 닫힌 가슴을 두드린다.


1장은 영혼의 동반자, 즉 사랑에 대한 탐구로 시작된다. 인간은 결코 완전하게 태어나지 않기에 두 영혼 사이에는 언제나 사랑의 갈망이 존재한다. 사랑은 진실과 실체를 판단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이다.

2장에서는 육체와 영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체는 흙으로 빚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그대의 집이다. 육체 속에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육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영혼 속에 있는 두 개의 육체가 하나로 만나는 것이다.

3장의 주제는 침묵과 홀로 있음이다. 침묵과 홀로 있음은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는 가장 쉬운 기술이다.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새로운 창조성이 자신 안에서 깨어난다. 모든 나무가 가지와 뿌리를 뻗으며 어둠과 빛을 향해 두 방향으로 자라는 것처럼 인간 역시 어둠과 빛을 향한 두 가지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랑과 고독,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어둠과 빛이다.

4장은 성장의 시학으로서의 '일'에 대한 사색을 하고 있다.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완전해지는 것은 자주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다. 특히 자신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이는 것이 되기를, 일과 행동을 통해 표현하는 진정한 방법을 찾기를 갈망한다.

5장에서는 시간과 영혼, 즉 생의 수확기, 늙음과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해 명상한다. 열정적인 가슴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확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젊은이와 기운이 빠져나간 노인의 유일한 차이는 시간이다.

6장은 몸에 입을 맞추는 영혼, 즉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죽음이 우리와 함께 삶의 길을 걸어온 친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나 다름 사람과 함께 있을 때나 상관없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다. 생은 한 순간도 되풀이 할 수 없고, 한 걸음도 되돌아갈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이런 여행에 있어 언제나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바로 죽음이다.

사랑과 수많은 진실로 가득 찬《영혼의 동반자》는 인간의 참의미를 찾기 위해 이제는 거의 잊혀진 고대 지혜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영화〈아스테릭스〉의 갈리아 영웅 아스테릭스,〈카멜롯의 전설〉의 아더 왕,〈브레이브 하트〉의 스코틀랜드 민족지도자 윌리엄 월레스. 이들 영화 속 주인공은 모두 켈트 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용맹한 영웅들을 보고 켈트 족을 판단하는 것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는 말처럼 끝없는 침략의 물결, 박해, 이주라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켈트 인들의 창고 속에 들어 있던 지혜의 보물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켈트 인들은 산과 강, 호수, 하늘 바다의 신들을 숭배했다. 그들이 장소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은 대지를 존중하고 생명의 순환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로 여겼기에 자연이 가져다주는 것을 감사하게 받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켈트 인들의 지혜는 감사와, 모든 존재가 에너지와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켈트 인들의 영향은 유럽인들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졌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순간과 영원, 인간과 신을 나누는 이분법은 켈트 인들에게 낯선 것이었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들에게도 이분법은 낯선 것이 되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것과 저것을 분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상상력 넘치는, 하나로 결합하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야말로 켈트 인들이 남겨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켈트 인들은 영혼의 동반자를 '아남 카라(ANAM CARA)'라고 불렀다. '자기 삶의 비밀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원래 하나의 흙이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남 카라다. 켈트 인에게 인간의 영혼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반쪽이던 영혼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아남 카라를 만나야만 한다. 영혼의 동반자와 함께 있을 때 인간의 영혼은 완전해지고, 가슴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영혼과 마찬가지로 가슴 역시 홀로 일어설 수 있게 태어나지 않았다. '가슴은 삶의 모든 경험마다 다시 태어난다. 그대에게 일어나는 각각의 일 속에는 그대의 영혼을 깊어지게 하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경험들은 그대 가슴 안에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킨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깊어지게 하고, 가슴 속에 새로운 곳은 만들어내기에 지금의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 이 시대의 삶 속에는 표현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들이 있다. 때로 표현되는 것은 피상적이고 매우 반복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침묵에 대해 더욱 너그러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 풍부한 침묵이 곧 우리에게 큰 공감을 일으키는 언어의 근원이 된다. (127p) -

- 코네마라에는 묘지가 바다 근처에 있어서 주변에 모래땅이 많이 있다. 무덤을 열기 위해 사람들은 네모난 뗏장의 세 면을 자른다. 사람들은 뗏장을 땅의 표면으로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말아 올리며 완전히 떼어내지는 않는다. 그런 다음 땅 속으로 관을 내린다. 기도를 하고, 무덤에 축복을 하고, 흙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나서 열린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뗏장을 펴서 무덤을 덮는다.

내 친구는 그것을 '반대로 하는 제왕절개'라고 부른다. 그것은 마치 위에 있는 세상에서 따로 살려고 흙의 모습을 하고 떠났던 인간을 땅의 자궁이 다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 완전히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236p) -

- 아일랜드는 유적지가 많은 땅이다. 그 유적지들은 텅 빈 장소들이 아니다. 그곳은 존재로 가득한 신성한 장소다. 한번은 아일랜드의 코네마라 지방에서 목사로 일하는 내 친구가 교회 밖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다. 근처에는 반 세기 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는 유적지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한 가족을 찾아가, 그 집 남자에게 기초 공사를 하는데 그곳의 돌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내 친구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다. 친구가 이유를 묻자 남자는 되물었다. "그렇게 하면 내 조상의 영혼들이 뭐라고 할까요?" (35p) -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진리를 일깨워 주는《영혼의 동반자》는 인간과 신성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이자, 지혜의 빛나는 보고이다. 이 책은 '영혼의 동반자'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삶을 바꾸는 강력한 경험'이다."
                                                                                                                                               ―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