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잊으라! 현재에 살라. 그것도 존재 전체로. 이 존재 전체의 삶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다. 피는 꽃도 지는 꽃도 모두 축복이다. 꽃이 진다해도 그것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끛이 지는 모습을 관찰해 보았는가? 그것은 실로 아름답다. 그것에는 슬픔이 있지만, 슬픔이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그대에게 말했는가? 오직 웃음만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웃음은 그 안에 슬픔이 없다면 천박한 것이고, 그리고 슬픔 안에 미소가 없다면 죽은 것이다. 그것들은 반대가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를 깊이있게 해준다. 슬픔을 가지고 웃을 때 그 웃음은 깊이가 있다. 슬픔이 미소지을 때 그 슬픔 속에는 환희가 있다. 삶은 칸막이 열차가 아니다. 흐르는 강물이다.
서로를 동등하게 만드는 두 가지의 힘이 있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대는 그 사람과 동등해진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순간에 그대는 모든 존재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도 열등하지 않고, 아무도 우월하지 않는다. 모두가 독특하고 다를뿐이다. 누구도 열등하지 않고, 누구도 우월하지 않다. 사랑 속에서 그대는 전체와 하나가 된다. 지금 사랑하는 그나 그녀가 존재계를 여는 문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동등해지고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세상을 증오하고 폭력을 가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와 자신의 심장을 기만하는 것이다. 사랑은 덮어둘 수 없는 빛이기 때문이다. 빛이면서 동시에 어둠일 수는 없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되 예수의 추종자가 되지 말라,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되, 부처의 추종자가 되지 말라. 제자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단지 배운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누군가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추종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깨달음을 흡수해 그대 자신의 내면의 불꽃을 점화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터무니없는 주장도 믿지말라. 누가 그것을 말하든지, 그가 위대한 자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자든, 권위와 권력과 특권을 가진 자든, 그가 터무니없는 것을 말하거든 절대로 믿지 말라.
무엇을 행하든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지 말라. 이것이 두번째 충고다. 그렇게되면 재난이 닥칠 테니까. 그러므로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알라. 자신의 한계를 아는 자는 현명하다.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는 자는 바보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는 결코 후회하지 말라. 나뿐 일을 했을때만 후회하라.
그대가 새처럼 가벼워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해하라. 이해 자체가 그대를 들고 다니며, 그대의 날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전혀 무게가 없다. 그대는 그것을 기억할 필요조차 없다. 어떤 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피가되고 뼈가 된다.슬픔을 이해하고 기쁨을 이해하라. 가장 난해하고 큰 이해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근심하는 자,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자, 그는 구도자다. 삶이 나를 보살펴 준다고 말하는 자, 그가 바로 구도자다. 내가 말하는 구도자는 삶을 떠나고 등지는 사람이 아니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심 걱정, 그 불안, 그 지나친 자기동일시를 포기하는 것이다. 강물을 억지로 떠밀려고 하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강물은 저 스스로 흘러간다. 그대가 떠밀 필요가 없다. 강물이 그대를 지금 이 순간으로, 이 언덕으로 데리고 오핬다. 그 강물이 다시 그대를 다른 언덕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삶이 고독하고 고통스럽다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없어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대가 삶의 자연스런 흐름을 간섭했다는 것을. 그대가 간섭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 삶의 자연스런 흐름을 따르라. 장자의 전체 메시지가 이것이다. 자연을 가로막지 말고 허용하라. 그것과 함께 흘러가라. 그것을 신뢰하라.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나왔으며, 그것이 그대의 어머니, 그대의 근원이다. 그리고 어느날 그대는 그 품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이 최종적인 목적지다.... 삶의 길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지적인 이해를 통해선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그대 인의 어린아이(순수의식)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으로 자연스런 인간, 자연스런 삶을 살고자 원한다면 그 길밖에 없다.
목수로 유명한 공수는 아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도구를 사용한 것보다 더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무에서 형태를 낳고 그의 마음은 자유로워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심의 경지에 있었다. 무엇이도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마음은 더없이 단순한 상태가 되어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았다.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 허리띠가 꼭 맞으면 허리의 존재를 잊는다. 마음이 옳으면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잊는다. 무리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유혹되지도 않는다. 그때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때 그대는 자유인이다. 쉬운 것이 옳은 것이다. 옳게 시작하라. 그러면 쉬워진다. 쉽게 나아가라. 그러면 그대는 옳다. 쉽게 나아가는 옳은 길은 그 옳은 길을 잊는 일이며 또 쉽게 나아간다는 것조차 잊는 일이다.
- 오쇼, <장자, 도를 말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