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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뭇잎숨결 2009. 2. 2. 08:35

1956년 8월 14일, 죽어서도 ‘편안한 작가가 아니’기를 바라던 브레히트, 편안한 잠에 들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일어 발음처럼 딱딱한 그의 시들을 읽던 중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영화(디어헌터)의 주제곡이 흐르고 있었다. 스탠리 마이어(Stanly Meyer)의 ‘cavatiana’라는 기타연주곡에 클레오 레인(Cleo Laine)이 가사를 붙인 ‘He was beautiful’이라는 곡. 영화나 기타연주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매혹되었을, 명곡이다.

브레히트의 시를 논하려다가 뜬금없이 영화와 음악 얘기를 시작한 것은 때마침 흐르던 음악과 브레히트의 시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은, 내가 느낀 어떤 기시감(旣視感) 어린 통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읽는 내내, 쉽게 몰입할 수 없는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건조한 시들의 이면에 자리잡은 그의 아픈 삶이 스쳐갔다.그는 1898년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60년도 안 되는 삶이지만, 그가 살았던 (살아야 했던) 시기는 그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사춘기에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이, 청년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미함이 관통했다. 1920년대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나치의 사상검열로 인하여 망명길에 오른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소비에트를 거쳐서 미국까지 이어진 15년에 걸친 망명기간에도 그는 순탄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다.

파시즘을 피해서 당도한 미국에서도 그는 궁핍에 시달리는 동시에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으며, 나치 치하의 유럽에 남겨진 동료(그와 비슷하게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경우가 대표적이다)들에 대한 죄책감은 집요하게 그의 내면을 괴롭혔다.


블로그에서 ‘He was beautiful’ 듣기
베를린에 있는 브레히트와 아내 헬레네 바이겔의 묘
1928년 <서푼짜리 오페라> 초연 제3막 엔딩 장면

끝없는 폭력으로 치닫는 세계 안에서, 어디에도 망명처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절망은,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극에 달한다. 미군당국은 그의 고향인 서독으로의 귀향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는 동독에 정착하게 된다.

동독에서 브레히트는 인간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는 시대에 대한 강렬한 풍자를 담은 실험적인 극작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는 달리, 사회주의 동독도 1953년 동베를린의 반(反)소비에트 항거를 소련 진압부대를 동원해 처절하게 짓밟은 데 이어 교조적인 스탈린주의가 동독 예술을 지배한다. 브레히트가 꿈꾸던 세계와 추구하던 예술은 그의 생애 안에서 끝내 빛을 발하지 못했고 동베를린 항거 몇 년 뒤 그는 마지막 망명지에서 생을 마친다.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마주해야 했던 시대의 폭력에 대한 고발과 내면의 고백을 담고 있다. 그의 시어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 보다, ‘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에 대한 직설적인 언급(‘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겪은 “거짓을 사주는 장터”로 가는 비참함(‘허리우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야만의 현실에서 “자신이 미워진”다고 고백(‘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다. 독일어의 딱딱한 발음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그의 시들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아픔이 지배했던 자신의 삶과 시대를 고발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그는 아름다웠다(He was beautiful)”라고 말한다. 그것은 야만의 시대에서도 누군가는 (비겁하게라도)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역설과 끝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은 그의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브레히트와 달리 많은 이들의 망명과 죄책감은 역사에 대한 외면과 망각에 머물고 말았다. 기억-역사를 망각하고 현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문학을 꿈꾸는 이율배반 보다는 낯설고 투박한 그의 언어와 정직하게 아픈 삶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흐르던 영화 <디어헌터>의 주제곡이 끝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 음악이 삽입된 영화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루고 있다. 전쟁터에 남겨진 친구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197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어두운 표정 사이로 낮게 울리던 기타선율. 이 선율을 들으며 읽은 브레히트의 시집은 낯선 언어로 가득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느낀 기시감은 역사에 짓밟힌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된 아픔에 연관되지 않았을까.

현실이 아름다운 서정시는 아니지만, 살아남은 자의 외면하지 않았던 삶-기록을 통해서 문학은 다시금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의 가장 폭력적인 시기를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망각과 무감각이 지배하는, 환멸이 일상화된 현재에서 바라본 그의 삶과 문학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HE WAS BEAUTIFUL.

오늘의 책을 리뷰한 '21cbach'님은
문학과 영화, 미술과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여러 차례 방황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20대의 끝에 운좋게 문학평론가로 등단함. http://blog.naver.com/21cbach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 책 속 밑줄 긋기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117쪽)

아침마다 밥벌이를 위하여 거짓을 사주는 장터로 간다
희망을 품고 나는 장사꾼들 사이에 끼어든다 - '허리우드'(118쪽)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135쪽)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나 뮌헨대학 의학부를 다녔다. 1924 년에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28년 <서푼짜리 오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계적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933년 2월 28일, 나치의 추적을 피해서 망명길에 올랐고,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며 15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1948년 동베를린으로 귀환, 첫 작품으로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공연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연극 연습 도중 심근경색증으로 1956년 8월 14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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