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풍경 혹은 배경이 되는 사람, 겸손한 안드레아 축일에 부쳐

나뭇잎숨결 2008. 11. 30. 07:14

 

Calling of Peter and Andrew-DUCCIO di Buoninsegna

1308-11.Tempera on wood, 43,5 x 46 cm.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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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로와(Gabriel Loire), 20세기, 레베,

 

 

 

 

사도 안드레아

 
 
◇ 성경에 나오는 안드레아
 
안드레아 사도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입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남자다운' '용감한'이란 뜻을 지니는데 기원전 2~3세기부터 유다인들 사이에는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복음서에는 안드레아가 예수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마태 4,18-22; 마르 1,16-20; 루카 5,1-11; 요한 1,35-51 참조). 공관복음에서는 배경이 갈릴래아 호숫가인데, 요한복음에서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또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를 먼저 부르셨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안드레아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나아가 안드레아는 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면서 네 복음서 내용을 종합하면, 안드레아는 고향이 벳사이다요 직업은 어부였으며,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 형 시몬과 함께 카파르나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가파르나움과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마을들로 서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복음서에서 안드레아 사도를 언급하고 있는 대목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대목들을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요한 6,1-15)에서 안드레아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년이 가진 것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게 되지요. 안드레아는 또한 예수님을 만나뵙고자 하는 이방인(그리스 사람)들의 부탁을 예수님께 전해드립니다(요한 12,20-6). 형 시몬을 예수님께 인도한 것까지 고려한다면, 안드레아 사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내실있게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안드레아는 형 시몬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와 함께 예수님께 종말에 관한 질문을 하는 네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마르 13,3). 특이할 만한 것은 열두 제자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안드레아를 포함한 이 네 제자가 늘 첫 번째로 거명된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시는 예수님"

6세기 초, 모자이크, 산타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라벤나, 이탈리아

 

 
◇ 전승에서 본 안드레아
 
안드레아 성인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 작품들을 보면 등에 한결같이 Ⅹ형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Ⅹ형 십자가는 안드레아 사도를 나타내는 고유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성인이 Ⅹ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들이 복음선포를 시작했을 때 안드레아는 흑해 서부 스키티아 지방에서 선교했습니다. 또 다른 전승들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가 선교한 지역은 오늘날의 터키 지역은 물론 그리스와 불가리아 지방에까지 폭넓게 걸쳐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가 많이 분포돼 있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그래선지 안드레아 사도는 오늘날에도 그리스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지요.
 
안드레아 사도는 로마제국 네로 황제 치세 때인 기원 후 60년 11월 30일 아카이아(오늘날 그리스 남부 펠레폰)의 파트라이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11월 30일을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로 지냅니다. 안드레아 사도를 처형한 아카이아 지방 로마총독은 에게아테스였습니다.
 
성인은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한 것이 아니라 밧줄로 십자가에 묶여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십자가에서 순교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만, 그 십자가가 X형이라는 이야기는 14세기쯤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있다가 357년에 성인이 순교한 그리스 파트라이로 다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유해가 옮겨졌고, 15세기에 두개골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됐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의 유해를 다시 그리스의 파트리아로 보냈습니다. 1054년 정교회와 분리된 이후 900년이 지나서 정교회와 다시 화해를 이룬 표시였다고 합니다.
 
한편 안드레아 사도는 또한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한데, 이는 4세기 쯤에 사도의 유해 일부가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는 전승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국기에는 안드레아 사도의 십자가를 뜻하는 Ⅹ형 십자가가 그려져 있지요.
 
[평화신문, 제975호(2008년 6월 22일), 이창훈 기자]

 

 

 

안드레아 : 베드로의 동생이며, 예수께서는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축일은 11월 30일 
                     [사도 베드로의 친동생/ X자 십자가에 못 박혀]

 

사도 베드로의 동생인 사도 안드레아는 형과 달리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로, 성서에 형 시몬 베드로가 단 한번의 설교로 3000명을 입교시킨 기록을 남긴 반면 안드레아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큰 어부, 안드레아는 작은 어부로 불린다. 이를테면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해 나눔의 영광을 받았던 사도였던 셈이다. 어부와 그리스, 러시아,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안드레아 사도의 문장은 푸른색 바탕에 X자형 십자가가 그려진 아주 단순한 형상. 안드레아 성인은 신약시대 로마제국의 속주로 마케도니아 이남 지역인 아카이아 (지금의 그리스 전역)에서 기둥에 묶어 창으로 찔러 죽이는 중형벌인 책형에 처해졌는데, 이때 성 안드레아가 X자형 십자가에 못 박혀 전승을 살린 듯하다. 이런 모양의 십자가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부른다. 안드레아 사도 는 외투를 입은 사도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긴 수염, 맨발로 묘사된다.

 

출처 : 성바오로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소명>, 6세기, 모자이크(부분),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라벤나, 이탈리아

 

 

위대한 조연 안드레아를 통해서.../ 김마리아

 

예수님 첫번째 제자는 안드레아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첫번째 불려진 자이지만 안드레아는 변두리 인물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동생으로 소개됩니다. 안드레아가 받은 부르심의 모습은 삶이 겸손하지 않는 한 쉽지 않습니다. 한 형제가 칭찬받을 때 다른 형제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칭찬받을 이유가 분명한데 칭찬받지 못하면 쓸쓸하다 못해 상처를 받습니다. 모두가 다 베드로가 될 수 없고 모두가 다 1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안드레아는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데려갔고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진 소년을 데리고 간 덕분에 굶주린 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직전 안드레아가 그리스 사람(이방인)을 또 데리고 갑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실속이 없습니다.  레오나르드 번스타인은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제2 바이올린이라고 했습니다. 제1 바이올린 연주자는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제2 바이올린 연주자는 쉽게 구할 수 없다 합니다.

 

두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신부가 되고 한 친구는 평수사가 되었습니다. 평수사는 친구 사제를 위해서 항상 뒤에서 기도해 준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성인 신부가 되도록 평수사는 빨래방에서도, 어디에서든 친구 사제를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신부는 교수가 되어 이 본당 저 본당 나가며 힘있는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신부님은 힘있는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신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고 유명했던 사제는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 알아보았더니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가셨나 알아보았더니 강론에 힘없을 그때 돌아가셨음을 알았습니다. 이 신부님이 영향력 있는 강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사님의 기도 덕분이였습니다. 강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성당을 빌리고 찬양대와 후원회,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분들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안드레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주연이 아니라 위대한 조연으로 살았던 사람이 안드레아입니다. 오늘날 누구나 눈에 띄고 화려하게 살고싶어 합니다. 그러나 안드레아가 보여준 모습은 부르심에 향기나는 응답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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