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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聖 Ignatius(이냐시오) 영성 형성의 배경 초대 교회부터 근세까지 신비 신학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聖 Ignatius 성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영성가들이 많이 있다. 이들 영성가들은 한결같이 교회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와 사탄간에 싸움이 고비에 달할 때마다, 그리고 교회가 위기에 닥칠 때마다 신비적 은총의 부르심을 받고 등장하였다. 이들 위인들 중에서 聖 Ignatius 성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 영성가들, 즉 안티오키아의 聖 Ignatius, 바실리오, 베네딕도,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 등을 들수 있을 것이다. 로욜라의 聖 Ignatius 성인은 안티오키아의 聖 Ignatius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였다. 성인은 자신의 영성이 영지 주의의 커다란 위험에 대처한 안티오키아의 聖 Ignatius 성인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이 성인을 존경하는 뜻에서 자신의 이름 이니고를 聖 Ignatius로 바꾸었다. 어느 편지에서 聖 Ignatius는 “이 영예로운 성인께 나는 우리 주 안에서 매우 특별한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갖고 싶습니다”고 피력한 바 있다. 특히 안티오키아의 聖 Ignatius 성인이 바울로의 로마서에서 따낸 ‘내 사랑이 십자가에 달리셨노라’는 글귀 때문에 이 성인을 좋아했으며, 그는 후일에 이 글귀를 금언집 첫머리에 적어 두었다. 이 외에도 영신 수련 전편에 속속들이 침투해 있는 영과 십자가의 사상이나 영신 수련에 수록된 ‘완덕의 이념’ 등은 안티오키아의 聖 Ignatius가 표명한 원리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주석-7) : 하지만, 작가가 자신이 받은 영향의 원천을 밝힌다고 해서 창작자로서의 독창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냐시오도 그 자신이 어떤 원천을 인용하였으며, 또 그가 본받으려던 인물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받았는가를 밝히면서 자신이 쓴 소책자(영신수련)에 경의를 표했다. (참조: 알렝 기옐무, 위의 책, 19쪽 이하).이냐시오 영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사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히 나와 있는 [ジョゼフ․ド․ギベ-ル, “聖イグナチオの靈性”, 倉田 淸, 中央出版社, 1938, pp. 217-231]을 참조할 수 있다.] 동방 교회의 성 바실리오와 서방 교회의 성 베네딕도 역시 聖 Ignatius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聖 Ignatius 성인이 회헌을 초안하고 자기 내심의 영성 체험을 성인들의 표양에 맞추어 겸손 되이 평가하던 무렵, 그는 루피노가 번역한 성 바실리오의 회규와 성 베네딕도의 회규를 면밀히 숙독했었다. 聖 Ignatius의 회헌에는 이 두 회규의 자취가 역력히 나타나 있다. 베네딕도 수도 성규의 서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영신 수련의 이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기 뜻을 버리고 참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싸우고자 순종의 극히 강하고 훌륭한 무기를 잡는 자여, 나는 이제 너에게 이 말을 하는 바이다.” 聖 Ignatius 성인은 베네딕도 성인을 특별히 좋아했다. 몽세르라트와 몬떼 까시노 수도원에서 지낸 일도 있으며, 그 기간에 크나큰 은총을 체험했고, 특히 몬떼 까시노에서 본 환시는 평생 잊지 못했다. [(주석-8) : 이냐시오에게 있어서 몬세라트 도상에서의 체험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긋는 강한것이었다. 특히 만레사 근처의 카르도네르 강가 언덕에 있는 동굴에서의 금욕적인 정화기간을 거치면서 거기서 체험된 ‘하느님 조명’의 사건은 [영신수련]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참조: 칼 라너/파울 임호프, “로욜라의 이냐시오”, 김태관, 성바오로출판사, 1993, 64-65쪽) 이러한 외형상의 상관관계 외에도 영성적으로,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영들을 식별하는 탁월한 재능에 있어서 그들은 매우 유사한 인물들이었다. ‘교회의 사람’으로서 아우구스띠노는 聖 Ignatius의 귀감이 되었다. 바실리오와 베네딕도 회규와 마찬가지로 聖 Ignatius는 아우구스띠노의 회규를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고 응용하였으며, 위대한 교부, 사랑 깊은 분별심을 갖고 전적으로 교회의 사람으로 변모해 간 아우구스띠노의 저서들을 매우 존경하였다. 특별히 아우구스띠노의 신학은 영신 수련에서 ‘두 개의 깃발에 관한 묵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석-9) : ‘두 개의 깃발에 관한 묵상’은 [영신수련] 둘째 주간 넷째 날에 나오는 내용으로써 137항-147항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보이는 교회와 그 우두머리를 뜨겁게 사랑하였고, 로마 교황에게 승복하느냐에 따라서 영의 진위가 식별된다는 진리를 고수하였다. 성녀의 대화집과 정치 문제에 개입한 서한들을 보면 훗날 만레사에서 聖 Ignatius 로욜라에게 작용했던 두 가지 이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는 영혼의 내부에 일고 있는 움직임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과 악마로부터 오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교계적 교회에 기꺼이 봉사하며 영혼을 거기에 바쳐 헌신하겠다는 사랑이다. 교회가 사탄과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내면적 사물과 외형적 사물은 굳게 결속되어 있다는 사상과, 따라서 영혼의 내밀한 움직임을 판별하는 기준은 첫째가 교회를 위하는 사랑이고, 둘째는 순수하게 영적인 것, 터무니없고 불경스럽고 인간답지 못한 ‘영’을 경계하고 불신하는 자세라는 확신이 있었다. 가타리나의 말에 의하면 참 영의 효험은 항상 ‘존경과 겸손’이며, 이 둘에서 확고하고 지혜로운 기쁨이 따른다는 것이다. 영신 수련에 나와 있고 聖 Ignatius의 몸에 밴 이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신성한 혁명’, 곧 회헌에 나오는 ‘분별 있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이냐시오영성] 03. 성 이냐시오(Ignatius)의 영성의 주요 내용
1. 서론(Ignatius de Loyola 영성의 주요 내용 - 관상, 순명, 감각적 영성, 식별)
聖 Ignatius와 그가 창설한 예수회는 여러면에서 곤란한 처지와 위기에 있었던 중세 말기의 교회에 새로운 활기와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존의 수도생활 양식에서 탈피하여 보다 활동적이고도 관상적인 수도양식을 살아갔던 聖 Ignatius 성인의 영성은 다음과 같이 대략 세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는 인간성 안에서 관상을 추구하는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聖 Ignatius 성인은 당시의 은수자들처럼 세상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인간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활동하면서 봉사와 관상의 두 차원을 조화시키길 원했다.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한 섬김과 순명의 영성이다. 聖 Ignatius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선 최선의 정신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실현하기를 바랬고, 이는 순명의 표본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순명은 교회와 그 대리자이신 교황님께 대한 충성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는 인간의 오관(五官)을 중요시한 영성이다.
聖 Ignatius 성인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보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오관과 내,외적인 기능들(지성, 감성, 의지, 상상력, 기억력등)을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고 관상하는데 사용하고,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다다르기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특징들 외에도 영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음의 움직임이 흘러가는 것을 감지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이 일으켜 주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식별하고 이를 통해서 나타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고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강조하는데 이를 ‘식별의 영성’이라고도 한다.
2. ‘人間性’을 토대로한 ‘관상’
聖 Ignatius는 자신을 물론이고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에게 세상속에 적극 투신하여 그리스도를 따른 활동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사명이 비롯되니, 그들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동료 인간들에게 구원을 알리고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 인식하고 있었다.[(주석-10) : 예수회 32차 총회문헌 62항]
이러한 그의 인식은 당시의 교회 상황에 대한 판단에서 나온 것인데, 그때의 隱世수도원들은 세상과 그 삶을 덧없는 것으로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사조를 표현하고 있었다. 수도원은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인가가 없는 촌락과 산중에 세워졌다. 수사들은 지역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사건과는 상관없이 교회 전례력에 따라서 생활했다. 수도자들의 말씨나 생활양식은 세상 사람들의 것과는 다르고 ‘성스러웠다.’ 침묵과 손일이 하루의 주요 일과였다. 세상과 맞서 수도원은 독립되고 자립하고 속세를 떠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드높은 왕국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聖 Ignatius는 인간사가 일어나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도피시키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세상의 어두움에 맞서서 승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동료들에게 도회지에서 살고 이웃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라고 가르쳤으며, 평상복을 입고 대중들이 쓰는 말로 이야기를 하고 그 지역의 풍습을 따르도록 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못지 않게 제자들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이수하기를 희망하였다.[(주석-11) : 신선용, “이냐시오의 영성과 현대인”사목(51호), 77-78쪽]
또한 그는 적대할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에 아직도 현존하는 악의 세력과 세속주의라고 보았다.
[(주석-120 : 세속주의 - 예수회 32차 총회문헌 74조에서는 ‘세속화’에 대해서 이렇게 애기한다. “세속화는 불의한 체제의 영속을 비호하고 조장하는 거짓된 신관, 그리고 인간 본연의 책무를 면제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신관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들의 여정을 함께 하시고 인류의 운명을 곧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분임을 알게 뵙게 만들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상징들을 모색해야 한다. 예수께 대한 생생한 기억은 이같은 성실한 창조 정신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한다.]
이처럼 聖 Ignatius와 초창기 회원들은 영성 수련의 영신적 체험을 통해서 당대의 세계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 시대의 호소와 요망사항을 파악하고자 힘썼는데,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온전히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 삼위께서 사람들로 가득찬 지구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광경’을 목도하였고, ‘제2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시기로 작정하시는 광경’을 관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이 보시는 안목으로 당대의 인간들을 차례로 주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의상과 행동거지가 천차만별하였다. 누구는 피부가 희고 누구는 검었다. 태평을 누리는 국민들도 있었고, 전쟁을 치르는 백성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울고 어떤 이들은 웃고 있었다. 누구는 건장한 몸을 지니고 누구는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편에서 태어나고 한편에서는 죽어가고 있었다.....”[(주석-13) : 영성 수련 102, 106항]
이 환시를 보는 가운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그분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이바지 하는 길인가를 깨닫기에 이르렀다.[(주석-14) : 영성 수련 91항-100항 ]
이렇게 聖 Ignatius는 시대의 표지들을 식별해냈기에 시대의 문제와 필요에 더욱 적절히 호응할 만한 그리스도교 생활양식을 창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악의 세력과 사악한 세계의 법도를 적대시하기는 했지만 그는 인간사가 일어나는 무대로부터 장소상으로 자신을 격리시키거나 도피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리스도교 생활이란 그리스도를 우두머리로 모시고서 악과 어둠과 죄의 세력에 맞서서 싸우고 쳐이기는 전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聖 Ignatius는 이러한 사명을 깨달으면서 지금까지의 수도원 영성생활이 시대의 필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새로운 위기와 요청이 발생했고 이것들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 운동이라는 부정적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이해하였다. 더구나 문예부흥과 과학의 새로운 발견은 가톨릭 사상의 주류와 대립되는 상황으로써 종래의 수도 영성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이런 판단을 내린 聖 Ignatius는 시대의 문제와 필요에 적절히 움직이고 대처할수 있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양식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 새로운 양식의 영성은 현존하는 가톨릭 교회에의 헌신을 재수긍하고, 모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장려하고, 하느님과 그 어른의 인류 구원 계획 ‘안에다’ 보다 깊고 보다 넓은 인문주의를 재정립하고자 추진하는 영성이어야 했다.[(주석-15) : 신성용, “이냐시오의 영성과 현대인”, 사목(51호), 78쪽]
따라서 그는 이러한 새 영성이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기도와 활동을 하나의 차원으로 연결하려고 하였다. 그는 기도와 일이 따로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보다 큰 봉사를 위한 상호 보완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활동적으로 타인들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섬기려 노력하면서도 그는 관상적 기도의 은둔 속에서 하느님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聖 Ignatius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이 2가지 원천을 이상적으로 통합시키려 했던 것이다.
[(주석-16) - 이에 대하여 예수회 32차 총회문헌 17조에서는 “그러므로 예수회 지역 공동체는 대내적(對內的)이 아니고 대외적(對外的)인 사도직 공동체이며, 주요 관심사는 소명에 따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이 공동체는 ‘파견받아 분산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관상적(觀想的)이지만 은둔적(隱遁的)인 단체는 아니다. 어디든지 파견받으면 즉각 떠나갈 자세를 갖추고 있는 남성들의 공동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매사에서 하느님을 만나뵌다”, 또는 “활동중에 관상한다”는 문구는 聖 Ignatius의 영성을 함축하는 문구들이다. 둘 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적 투쟁 혹은 규율을 전제한다. ‘관상’은 침묵과 은둔중에 찾는 대상을 의미하며, ‘활동’이라고 하면 사람들과의 만남과 일을 뜻한다. 그런데 聖 Ignatius의 이념에 의할 것 같으면, 이 두 영역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한 인간 안에 이상적으로 통합시킨다는 것이다. 여느 그리스도교 영성에서나 항상 그러하듯이 그 전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이 생활양식을 몸에 익히신 귀감이시며, 야시오 영성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면 ‘활동중에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예수의 벗’이 되라는 부름을 받는 것이다.[(주석-17) : 신성용, “이냐시오의 영성과 현대인”, 사목(51호), 78쪽]
3. 순명(섬김)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은 인간 안에 잠재해 있는 자유에로부터 그 자유를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순명에서 흘러나온다는 역설적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 삶의 방향은 성령의 움직임과 참된 조화를 이루면서 하느님께 귀기울이고 응답하는 신앙인의 모습에 있는 것이다.[(주석-18) : 데이비드 플레밍, 『오늘날의 이냐시오의 영성』 류해욱 편역, 65쪽]
이와 같은 순명에 대해 聖 Ignatius 성인이 얼마나 강조했는지는 그가 1553년 3월 26일자 서한에서 전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순명’에 대해 권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수도회에서는 단식과 철야 기타 엄한 고행에서 탁월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렇지만 본회에서 우리 주 하느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의 의지를 이탈하고 우리의 판단을 부정하는 가운데 순수하고 완전한 순종에서 탁월해야 할 것입니다.”
聖 Ignatius 성인이 이렇듯이 강조한 순명은 전직 기사가 착안한 순명으로서 안이한 규율 체계라고는 할 수 없는 풍요롭고 깊은 신비 체험을 통해서 전해진 유산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만레사라는 곳으로 순례를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강렬한 신비 체험을 하게 되고 그럼으로 해서 이 순례가는 신비가로 변모하였고, 기사였던 그는 교회의 아들로 새사람이 되었던 것이다.[(주석-19) : 김연희, 『성 이냐시오의 순명에 대한 고찰』, 13-14쪽 ]
또한 이러한 순명은 예수회의 회헌 안에서도 계속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주석-20) : 10편에서는 전체 조직체 내의 복지를 보전하기 위한 기능으로서의 순명을, 9편에서는 순명과 바른 통치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8편에서는 분산된 회원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한 순명의 기능 을, 4편에서는 연학이라는 맥락에서, 3편은 수련자들의 순명을 다룬다.]
聖 Ignatius 성인은 순명의 세 가지의 종류를 말하고 있으며 완전한 순명에 이르는 이들의 단계에 대하여 언급한다.
“첫째 단계로 ‘시행상’의 순명은 명령받는 것을 행동으로 이행함으로써 준수되며,
그 둘째 단계로 ‘의지상’의 순명은 순명하는 자가 명령하는 자와 똑같이 바랄 때 이루어지며,
순명의 셋째 단계는 우리의 이해와 판단을 장상의 이해와 판단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회헌 550)
이 셋째 단계가 없이는 절대로 온전하고 완전한 순명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시되는 것이 장상의 명령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다. 聖 Ignatius 성인은 하느님께서 더 큰 봉사를 하겠다고 모여든 당신의 어린양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과 성령(聖靈)은 장상의 미숙함을 보충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
아울러 聖 Ignatius 성인은 장상이 “ 그 직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분별력’ 또는 ‘분별 있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며, 장상은 다스리는 가운데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봉사하기 위해 모인 수하인들의 가정을 다스리는, 모든이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장상은 충심으로 우러나오는 내적 존경의 태도를 보전하는 한편, 그리스도와 당신 제자들과의 우애에 넘친 일치를 드러내도록 담화하는 태도에 사랑의 순박함을 실천해야 한다”(회헌 222,726)고 말한다.
다음은 聖 Ignatius 성인의 순명의 기초와 모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순명이란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야훼의 종’의 마음으로 생활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자세에 나타나는 신비로 우선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신앙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일생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라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 “예”는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는 무조건적인 것이었다. 이리하여 순명의 본질이 그리스도 모방에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활 이전 30년 동안 나자렛 고을에서 인간에게 순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죽기까지’(필립2,8) 순명하셨다. 聖 Ignatius는 십자가를 앞에 모시고 거기에서 하느님께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도록 초대한다.(영신 수련 195, 208항)
聖 Ignatius 성인의 저서에 보면 ‘하느님을 섬김’, ‘하느님을 섬기다’ 등의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이런 어휘들은 聖 Ignatius 성인의 영성을 집약해서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하느님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는 의미를 넘어 聖 Ignatius 성인의 삶의 여정 안에서 체득된 최선의 정신으로 주님이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그분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며 그 뜻을 실제로 이 세상에서 이룬다는 의미이다.[(주석-21) : 류병일,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하느님 섬김에 관한 고찰』, 74-75쪽]
이러한 섬김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聖 Ignatius 성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그리스도께 대한 섬김은 교회에 대한 충성을 의미했다. 이 교회는 역사 속에서 최악의 위기에 접해 있었고 종교 개혁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이런 교회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그리스도의 정배인 로마 교회 안에서 聖 Ignatius 성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수단과 자신의 잠재적 능력이 더 완전히 성숙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서 교회에 대한 충성은 주님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에 대한 충성을 의미했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섬김의 영성은 교회와 교황에 대한 특별한 순명, 예수회 내부 장상에 대한 순명 등으로 실재화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聖 Ignatius 성인과 예수회가 역사적으로 하느님과 교황께 대한 순명을 역설한 유일한 단체가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 절대 순명의 원칙은 지원자들의 지원이 감소될까 봐 두려워했던 회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명의 근본적인 원칙은 聖 Ignatius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보여졌으므로, 그는 이 원칙을 그가 착안한 규범서의 중심으로 삼게 하고 예수회의 특징적인 일면이 되게 하였다.[(주석-22) : 김연희, 위의 책, 22-23쪽]
끝으로 聖 Ignatius 성인에 있어 순명은 신학적, 신비적 기초 외에도 정신을 깨어 있게 하고, 융통성 있게 하는 아주 실제적이고 심리적인 역할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영신 수련에서 말하는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개방을 위한 순명이기에 명령을 받는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장상들에게도 해당된다. 이것은 단지 무조건적인 순명이 아니라, 사람들을 올바로 이끌어 주는 순명이다.
4. 感覺的 靈性 -- ‘五官’을 중요시한 靈性
聖 Ignatius의 영성은 우리가 오관을 사용하여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보여준다. 오관의 사용으로 현 시점에서 우리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으며, 피정자는 예수의 생애를 묵상하며, 각 사건들 안에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주석-23) : G. 허친슨, 여섯 개의 길, 차순향 역, 성바오로 출판사, 19913, 83쪽]
그는 특히 “영신수련”의 두번째 주부터 기억력과 상상력을 통하여 그리스도 공생애의 사건 현장으로 훈련자의 영혼을 인도하고, 필요에 따라 묵상과 관상이라는 영성 교육을 제시한다. 묵상은 우리 영혼 속에 영적인 환경을 조성해주며, 관상의 세계를 위한 준비작업이다.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셨기에 그 신비는 우리의 감각적 세계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감성적 경험을 위해 인간이 지닌 기능들을 사용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며 그 기능들 중에 상상력의 가치는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주석-24) : 유해룡, 「영성 형성의 모델 연구」, <기독교사상>, 대한기독교서회, 1994.5(425호), 101-102쪽]
聖 Ignatius는 우리가 오관을 중요시하는 크리스챤이 될 것을 권고하고, 그는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을 성서의 말씀에 집중시킴으로서 기도를 생생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주석-25) : 이냐시오[영신 수련](이하 [영신수련])의 262항에서 312항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신비적 사적들로서 각기 묵상과 관상을 돕기 위한 세개의 요점을 준비해 두었고, 이것은 둘째 주간의 첫 날 관상에서부터 네째 주간까지 행해야 할 관상의 주제이다.]
그의 기도입문은 예수님이 일상적인 것들이 나타내는 상징을 이해시키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깨우치기 위해 청중들의 시각, 청각, 촉각을 이용하셨으며,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단지 말씀 뿐만 아니라 행동과 존재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건들을 보여준다.[(주석-26) : 예를 들면, 어린이에게 안수로 축복하심(마르 10,46), 벙어리의 치유시 침을 발라 혀에 대심(마르 7,33-34) 등이다.]
흔히 우리는 기도를 순수 영적으로 생각하여 기도생활에서 오관의 느낌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게쎄마니의 예수님의 모습은 전인(全人)으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聖 Ignatius는 우리에게 기도를 잘 하기 위해 오관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주석-27) : 허친슨, 여섯 개의 길, 85-85쪽]
[영신 수련] 248항에서 聖 Ignatius는 “만일 자기 오관의 사용에 있어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이는 준비기도를 할 때에 자기를 하느님께 의탁하고 오관 중 하나씩을 생각한 끝에 매번 성모송이나 주의 기도를 한 번 욀 것”을 권고한다.[(주석-28) : 이냐시오, [영신수련], 윤양석 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02, 103쪽. (이하에 지칭되는 [영신수련]은 이 번역본을 참고로 했음)]
그럼으로써 묵상 또는 관상에서의 오관 사용외에 기도의 한 방식으로서도 오관의 사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聖 Ignatius는 이것을 영신수련에서 영혼의 향상과 하느님께서 기도를 받아주시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聖 Ignatius는 오관을 하느님이 주신 창조의 선물로 받아들이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으며, 오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를 관상하고, 단계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에 접근해 가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믿음이 담겨져 있다.
그 하나는 기도하는 자는 상상력을 통해 수용적 자세를 취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접촉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하느님은 기도하는 이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인 감각은 영성적인 감각으로 전이되어 그리스도와의 친밀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聖 Ignatius의 “영신 수련”에서 오관은 내면의 신비를 파고들어 내적인 영성 형성에 중요한 매개체가 되며, 또한 중요한 방법론인 것이다.[(주석-29) : 유해룡, 「영성 형성의 모델 연구」, 103쪽]
5. ‘식별’의 영성
聖 Ignatius의 영성이 식별의 영성이라는 것은 우선 그의 [영신 수련] 23항에서 잘 드러난다. “사람은 우리 주 천주를 찬미하고 공경하고 그에게 봉사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 사람은 사물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면 그만큼 그것을 이용할 것이고, 또 방해가 되면 그만큼은 배척해야 할 것이다.”[(주석-30) : 영신수련 23항]
이렇게 사물의 식별을 이야기하고 있는 23항에는 ‘원리와 기초’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또한 [영신 수련] 313항에서 327항까지에서는 첫째주간에 더 필요한 ‘선신과 악신을 구별하는 규범’을 주고 있으며, 328항에서 336항까지는 둘째주간에 더 필요한 ‘선신과 악신을 구별하는 규범’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聖 Ignatius 영성의 핵심은 영신 식별의 실천적 지혜이다. 현실적 적응력과 박동감에 넘치는 이 영성은 영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음의 움직임의 방향성을 감지하고 이해하면서, 하느님께서 일으켜주시는 움직임을 식별하고 거기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실행하고자 하는 열망을 강조한다. 즉 聖 Ignatius의 영성은 식별의 영성인 것이다.[(주석-31) : 「영신식별의 한 가지 실천적 방법」,<사목>,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7(174호),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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