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첫/김혜순

나뭇잎숨결 2021. 8. 25. 16:31
 

   

첫 / 김혜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에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첫,첫,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첫.첫.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오늘 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꽃,꺼억,

죽엇다. 주긋다.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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