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의열(義烈)하고 아름다운 / 박정대

나뭇잎숨결 2022. 1. 9. 10:24

의열(義烈)하고 아름다운 / 박정대

 

 


낡은 흑백사진 속의 얼굴처럼 흐린 하늘, 톱밥난로 속에서 의열의열 소리를 내며 바알갛게 타오르는 불꽃들/ 터져 나오는 기침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는 가루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용의 뿔처럼 흩어져 간 동지들을 생각한다/ 자꾸만 기침이 난다 말을 한다는 건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눈이 내릴 듯 달무리 가득한 밤 그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구름이 운반하는 음악들 어쩌면 아침이 오기 전에 눈발로 떨어질 것이다/ 마음은 늘 절벽 같아서 한 발만 내디디면 지상에서 아름답게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다는 건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눈은 밤새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처럼 내려서 무장무장 쌓이는데 허공을 가로지르며 지상으로 걸어오는 눈발들, 하얗게 진군하는 푸르디푸른 불꽃의 마음들/ 누군가 밤새 기침을 하더니 기침은 허공으로 다 흩어져 버렸나/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생각을 좇아서 다다른 아침/ 이토록 광활한 고독과 침묵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아침의 방문을 열면 봉창을 통과한 햇살이 환하게 펼쳐진 한 장의 들판을 물고 다시 날아오른다/ 오 밤새도록 내리고 다시 날아오르는 의열하고 아름다운 이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