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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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르강(헤이룽강:흑룡강) : 러시아 연방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중국 둥베이의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타타르 해협으로 들어가는 강. 헤이룽강은 상류의 실카강과 오손강을 포함하면 길이 4444km(세계 8위)가 된다. 러시아어 '아무르'는 에로스라는 뜻으로 같은 강을 두고 중국인들이 '검은 용'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인데 반해 러시아인은 '사랑의 신'이라 부르고 있다.
* 정암사(淨巖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갈래사(葛來寺)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 적멸보궁(寂滅寶宮 ) :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여래의 사리를 수마노 탑에 봉안하고, 이를 참배 하기위해 건립한 법당이다. 적멸보궁이란 모든 바깥경계에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암사는 '적멸궁'이라고 하고 있다.
* 2005년 제19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