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꽃들이 꺼지는 순간/려원

나뭇잎숨결 2021. 11. 8. 19:04

꽃들이 꺼지는 순간

  

   - ​려원

  툭 하고 꺼졌다

  아버지는 캄캄한 방을 흔들어 촬촬 소리가 나면

  불꽃이 수명이 다한 거라 했다

 

  할머니에게 주려고 동백을 돌려 땄다

  그때 퍽, 봄이 꺼졌다

 

  알을 빻은 동백을 삼베주머니에 넣고

  쥐어짜던 두 손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흘렀다

  거센 물줄기만 끌어 올리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길게 아래로 흘렀다

 

  꽃은 전류를 타고 온다

  돌려 딴 동백을 받은 적이 있다고

  돌려 끼우면, 백열등은

  공중에 매달린 꽃이 된다고 지금도 믿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백열등을 돌려

  방을 끈 적이 있다

 

  떨어질 때 꽃술이 끊어지고

  검은 머리카락이 풀렸다

 

  꽃가지 하나를 꺾으면

  몇 송이의 꽃들이 툭 하고 꺼지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