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연가 9/마종기
나뭇잎숨결
2021. 11. 8. 18:47
연가 9
마종기
1
전송하면서
살고 있네.
죽은 친구는 조용히 찾아와
봄날의 물속에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지,
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
그럴까, 봄날도 벌써 어둡고
그 친구들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네.
2
의학교에 다니던 5월에, 시체들 즐비한 해부학 교실에서 밤샘을 한 어두운 새벽녘에, 나는 순진한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네.
희미한 전구와 시체들 속살거리는 속에서, 우리는 인육(人肉) 묻은 가운을 입은 채.
그 일 년이 가시기 전에 시체는 부스러지고 사랑도 헤어져 나는 자라지도 않는 나이를 먹으면서 실내의 방황, 실내의 정적을 익히면서 걸었네. 홍차를 마시고 싶다던 앳된 환자는 다음날엔 잘 녹은 소리가 되고 나는 멀리 서서도 생각할 것이 있었네.
3
친구가 있으면
물어보았네.
무심히 걸어가는 뒷모습
하루 종일 시달린 저녁의 뜻을.
우연히 잠 깨인 밤에는
내가 소유한 빈 목록표를,
적적한 밤이 부르는 소리를,
우리의 속심은
깊이 물속에 가라앉고
기대하던 그 만남을
물어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