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플라톤의 향연/파이드로스/리시스

나뭇잎숨결 2020. 4. 18. 08:38

 

 

 

 

플라톤의 향연 파이드로스 리시스, 박종현 (역), 서광사 , 2016.12.30. 472페이지

 

 

 

 

 

《플라톤의 향연/파이드로스/리시스》 편은 서양 고대철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기틀 아래 플라톤 철학 최고의 전문가 박종현 교수가 역주한 책이다. 이 책은 헬라스어 원전 역주서로서, Oxford Classical Texts(OCT) 중에서 J. Burnet이 교열 편찬한 Platonis Opera, 제2권(1901) 및 제3권(1903)에 수록된 해당 대화편들을 기본 대본으로 삼고, 그 외 다수의 판본들을 참조하여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플라톤이 사랑(er?s)과 우애(우정: philia)를 다룬 세 개의 대화편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시기적으로 초기 대화편에 속하는 《리시스》 편이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 《향연》 편과 《파이드로스》 편보다 앞선다. 따라서 세 대화편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 사랑과 우정에 관해 먼저 멍석을 깔아 놓은 《리시스》 편이다. 하지만 박종현 교수는 흥미롭고 흥분까지도 안길 그러한 대화편부터 먼저 읽는 게 책 읽기의 보람 면에서도 권할 일일 것 같아서 이 책의 배치를 이렇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역자  박종현은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부터 2000년 2월까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정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1987년에는 아테네 대학의 초청을 받아 연구와 유적 답사를 했으며, 1992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를 했다.  저서로《헬라스 사상의 심층》(서광사, 2001), 《희랍 사상의 이해》, 《플라톤》(편저), 《적도(適度) 또는 중용의 사상》(아카넷, 2014)이 있으며, 역주서로 《플라톤의 국가(政體)》(서광사, 1997),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서광사, 2000), 《플라톤의 네 대화편: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서광사, 2003), 《플라톤의 필레보스》(서광사, 2004), 《플라톤의 법률》: 부록 《미노스》·《에피노미스》(서광사, 2009),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라케스/메논》(서광사, 2010), 번역서로는 《희랍철학입문》(서광사, 2000)이 있다.


철학서적 전문출판 서광사는 서양 고대철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야심 찬 기획 아래, 플라톤의 대화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1988년부터 계약하여 출판해 오고 있다. 헬라스어 원전에 대한 번역뿐만 아니라 주석까지 단 형태로 출판해 왔으며, 이번에는 그 일곱 번째 결실로 《플라톤의 향연/파이드로스/리시스》 편을 출간하였다. 플라톤 철학 최고의 전문가 박종현 성균관대학교 명예 교수는 《플라톤의 국가(政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플라톤의 네 대화편》, 《플라톤의 필레보스》, 《플라톤의 법률》,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라케스/메논》 편에 이어 《플라톤의 향연/파이드로스/리시스》 편까지 서광사에서 펴냈다. 이로써 플라톤 전집의 약 70퍼센트 분량이 박종현 교수의 우리말 역주(譯註)로 출간된 셈이다.


이 책은 헬라스어 원전 역주서로서, Oxford Classical Texts(OCT) 중에서 J. Burnet이 교열 편찬한 Platonis Opera, 제2권(1901) 및 제3권(1903)에 수록된 해당 대화편들을 기본 대본으로 삼고, 그 외 다수의 판본들을 참조하여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플라톤이 사랑(er?s)과 우애(우정: philia)를 다룬 세 개의 대화편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시기적으로 초기 대화편에 속하는 《리시스》 편이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 《향연》 편과 《파이드로스》 편보다 앞선다. 따라서 세 대화편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 사랑과 우정에 관해 먼저 멍석을 깔아 놓은 《리시스》 편이다. 하지만 박종현 교수는 흥미롭고 흥분까지도 안길 그러한 대화편부터 먼저 읽는 게 책 읽기의 보람 면에서도 권할 일일 것 같아서 이 책의 배치를 이렇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세 개의 대화편들 첫머리의 해제에서는 집필 시기와 배경 등에 관한 정보와 더불어 독보적인 해설까지를 담고 있다. 한편, 목차 부분은 원전에는 없던 것으로, 대화의 진행을 순서에 따라 요약, 제시하여 독자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향연》 편 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들 중 하나로서, 훗날 사람들이 이 대화편에 대해 붙인 부제(副題)는 <에로스에 관하여>이다. 아가톤의 비극 경연에서의 승리에 대한 축연이 있은 다음날의 만찬에서, 파이드로스의 요청대로 바로 이날의 담론 주제를 ‘에로스’로 정하고, 이에 대해 저마다 진지한 발언을 차례로 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그야말로 ‘학술적인 향연’의 대표적인 장에 독자들은 초대되는 셈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사랑의 감정이 왜 저마다의 귀중한 자산일 수 있는지, 또한 그 가능성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전범(典範)을 소크라테스의 발언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대화편은 그 많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전혀 철학책 같지 않게 빼어난 문학 작품처럼 재미를 선사하여 아마도 어디서고 한달음에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파이드로스》 편 역시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들 중의 하나로서, 훗날 사람들이 이 대화편에 대해 붙인 부제는 <아름다움에 관하여>이다. 모처럼 소크라테스가 강변의 풀밭에 누워 파이드로스로부터 ‘사랑’과 관련된 리시아스의 글 내용을 듣다가, 그는 그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히고 현장을 떠나려 하나, 영적인 알림의 경고를 받고서, ‘에로스’에 대한 새로운 발언을 하는 내용을 다룬다. 혼의 본성과 참된 존재들에 대한 앎과 그 영역, 그 상기(想起), 서로 다른 성향의 쌍두마와 이들을 모는 이로 비유되는 혼의 처지, 지혜 사랑으로 향하도록 하는 ‘에로스’, 변론술·변증술의 일환으로서의 ‘모음’과 ‘나눔’, 문자를 이용한 글쓰기의 한계와 적절한 혼을 상대로 한 말하기의 효용성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만나게 된다.

《리시스》 편 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 중에서 비교적 끝 쪽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 중의 하나로서, 훗날 사람들이 이 대화편에 대해 붙인 부제는 <우정에 관하여>이다. 우리가 편하게 일상적으로 말하는 ‘친구 사이’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새삼 생각해 보게 하는 갖가지 물음을 쏟아 놓는 대화편이다. 그러나 “친구가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지만, 변죽만 울리지, 정작 그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대화편은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묻는 다른 초기 대화편들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이 대화편은 훗날의 다른 대화편들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을 미리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초기 대화편으로서의 그것 나름의 의의를 충분히 지닌다.

《플라톤의 향연/파이드로스/리시스》 은 우리나라 플라톤 대화편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해 온 박종현 교수의 역주서답게, 이 책에서는 그의 켜켜이 쌓인 관록에서 느껴지는 학문적 도저함과 필력의 원숙함을 느낄 수 있다. 박종현 교수의 다른 역주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어휘 선택 하나하나, 문장 성분의 배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며, 친근하고 다양한 구어체적 어미를 사용하여 독자들 또한 작품 속 대화에 직접 참여한 것과 같이 생생함을 선사하고 작품 감상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본문만큼이나 방대한 분량의 각주를 통해 혼동할 수 있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여 번역이 갖는 근본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고자 하였고, 상세하고도 학술적인 부가 설명을 함으로써 초학자와 전공자 모두를 배려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플라톤 대화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향연》 편에 대한 출간 문의는 그동안 끊이지 않았었다. 특히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라케스/메논》이 출간된 후 6년 만이라, 이 책의 출간이 많은 독자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P30 4. 변증술, 그리고 모음과 나눔

 

  '변증술(dialektiké)'이란 말은 '대화하다(dialegesthai)'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러니까 변증술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렇게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다양한 말의 기술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변증술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소피스트들이 행했던 쟁론술(eristiké)이 되었든 연설술(rhétoriké)이 되었든, 또는 소크라테스가 했던 문답술(dialektiké)이 되었든, 모두 대화의 형태를 겸하거나 대화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대화의 기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하는 바에 바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술의 창시자로 엘레아의 제논을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그를 반론술과 연결 지음으로써 변증술과 반론술을 구분 짓고 이에 따라 소피스트를 비롯한 기존 연설가들의 연설술과 철학적 연설술을 구분짓고자 한다. 다른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은 플라톤의 변증술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의 기술이어서 '대화의 기술'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변증술'을 정식화해서 철학 고유의 방법론을 끌어들인 사람은 뭐니 뭐니해도 플라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변증술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만 한정하더라도 나름대로 긴 역사와 의미의 변천을 겪고 있어서 <파이드로스>에 이르기까지 변증론이 어떤 의미변화의 과정을 겪어 왔는지 보는 것도 <파이드로스>를 이해하는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P36 플라톤의 대화편 저술시기를 추정하는 데 사용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대화편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을 통하는 방법이 있고, 플라톤의 문체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으며, 플라톤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전제하고 그 틀에 따라 추정하는 방식이 있다. 먼저 대화편에서 언급되는 내용으로 보면,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언급이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대화편에 이소크라테스는 전도가 유망한 연설문 작성가로 언급된다. 그의 전성기를 370년에서 350년 사이로 볼 때, 최소한 이 대화편은 그 사이에 작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체를 보고 저술시기를 추정하는 방법은 이 해체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며, 또한 문체만을 가지고 시기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방법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의 사상적 발전 과정으로 보면 이 대화편에 언급되는 '형상이론', '정의' 등의 덕에 대한 언급, '모음과 나눔의 변증술', '혼의 삼분설' 등이 추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형상이론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언급되기 시작하여 <국가>, <향연>, <파이드로스>에서 주로 언급되고, <파르메니데스>에서 비판되면서부터 그 이후의 대화편에는 이들 대화편에 언급되는 것처럼 주제로 삼아 언급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파이돈>에서는 혼이 단일한 실재라고 언급하는 반면에 혼의 삼분설은 <국가> 이후에 언급되는 이론이다. 또한 <향연>에서는 같은 사랑을 주제로 삼았으면서도 혼의 삼분설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연결해서 <파이드로스>를 적어도 <파이돈>과 <향연> 이후에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가>에서는 변증술이 언급되면서도 그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소개되고 있지 않은데, <파이드로스>에서는 그 방법을 '모음과 나눔'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파이드로스>에는 정의와 같은 형상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것을 <국가>를 암암리에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 이렇게 볼 때 <국가> 보다 <파이드로스>가 나중에 쓰인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의 중기 형상이론이 비판받는 것을 감안하면, <파이드로스>에서 여전히 형상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분할 가능성에 토대를 두는 '모음과 나눔'을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 <파이드로스>를 <국가>와 <파르메니데스> 사이에 쓰인 대화편으로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245c

모든 혼은 죽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은 죽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것을 움직이고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은 그 운동의 정지를 갖기 때문에 삶을 멈춘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만이 자신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이것이 운동의 원천이자 기원이 된다. 그런데 기원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생기는 모든 것은 기원으로부터 생겨날 수밖에 없지만, 기원은 어느 것에서도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원이 어떤 것에서 생긴다면, 그 기원은 기원으로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소멸하지 않는 것 또한 필연이다. 만약에 기원이 파멸한다고 한다면, 기원은 도무지 어떤 것에서 생기지도 않을 것이고 기원에서 다른 것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원으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야 한다면 말이다. 자신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운동의 기원이 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다. 그런데 그것은 소멸할 수도 생겨날 수도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천계 전체와 생성하는 것 전체는 공멸해서 정지하하는가 하면, 움직여지는 것이 거기서 생겨나오게 될 것을 다시는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바로 이런 것이 혼의 본질과 정의라 말해서 부끄러울 게 없다. 왜냐하면 움직임이 바깥에서 주어지는 모든 물체는 혼이 없는 것이지만, 자신 안에서 자신으로부터 움직임이 주어지는 것은 - 혼의 본성이 그런 것이기에 - 혼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혼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자신이 자신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면, 필연적으로 혼은 생기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이다.

 

249e 누군가가 이곳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며 참된 것을 상기하고, 날개가 돋고 날아오르려는 열의를 갖고 날개를 퍼덕이지만, 그럴 수 없자 새처럼 위를 쳐다보고 아래에 있는 것들에 무관심할 때마다, 그가 광적인 상태가 되는 원인으로 꼽히는 광기 말이지. 이 광기가 신들림 중에서 그 자체로도 훌륭하고, 훌륭한 것들에서 태어나기도 했으며, 이것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것을 공유하는 사람에게도 이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 된다는 것에, 그리고 이 광기에 참여하여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을 하는 이라 불린다는 것에 도달했다는 말이지. 말했던 대로, 본래 모든 인간의 혼은 실재들을 관조한 터이지만 - 그렇지 않았으면 이 삶에 이르지 못했을 거야 - 이것들로부터 저것들을 상가하기가 어느 혼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고, 그때 저기에 있던 것들을 얼핏 보았던 혼들에게나, 이곳으로 떨어져 불행하게도 어떤 사귐들에 의해 옳지 못한 쪽으로 발길을 돌려 그때 보았던 신성한 것들을 망각하기에 이른 혼들에게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 기억을 충분히 갖춘 소수의 혼들만이 남을밖에. 그런데 이들은 저기의 것들과 닮은꼴의 어떤 것들을 볼 때면, 넋이 나가서 더 이상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면서도, 그것을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는 탓에 정작 그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지하지.

 

261e 반론술은 법정과 민회 연설에만 국한되지 않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 관련되는 단일한 어떤 기술인 - 그게 기술이라면 - 것 같아 보이네. 그것으로써 누구든지 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한 모든 것과 닮아 보이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닮아 보이게 하고 그걸 숨기는 경우에는 그것을 밝혀낼 수 있을 기술 말일세.

 

265b 한편 우리는 신적인 이탈을 네 신에 따른 네 부류로 나누어서 아폴론의 영감은 예언술, 디오뉘소스의 영감은 비의술(秘儀術), 다시 무사 여신들의 영감은 시작술(詩作術),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영감은 네 번째 부류로 놓고서, 사랑에 관한 광기를 최고의 광기라고 주장했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는 내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랑의 상태를 모상을 통해 재현하면서, 아마 어떤 진실을 접하기도 했겠고 다른 데로 새기도 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전혀 못 믿을 이야기를 빚어낸 것은 아니고, 옛이야기 조의 한 가지 찬가를, 적절하면서도 말을 삼가며, 자네와 나의 주인인 아름다운 소년들의 보호자 에로스를 위하여 불렀다네, 파이드로스

 

271c 이야기의 힘은 혼을 이끄는 것이기에 연설술에 능하게 될 사람은 혼의 부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그것은 그 수가 이만저만하고 형태는 이러저러하며, 그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저러저러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것들이 이렇게 나뉘고 나면, 이번에는 이야기들의 형태는 그 수가 이만저만하고, 그 각각은 이러이러하다. 그리하여 이러이러한 사람들은 여차여차한 이유로 이러이러한 이야기에 의해서 이러이러한 것들에로 잘 설득되고, 이러이러한 사람들은 여차여차한 이유들로 설득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들을 충분히 깨닫고 나서는, 그다음으로 그것들이 실생활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형태를 관조하여, 감각에 의해 날카롭게 뒤쫓을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가 이전에 함께하며 이야기들에 관하여 들은 것들에 의해 설득되는지를 충분히 말할 수 있고, 곁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때 그 이야기들이 말하던 것이 지금 실제로 그의 곁에 있는 이 사람이고 이 본성이며 이 이야기들을 이것들의 설득을 위해 이런 식으로 처방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때라야 그 기술은 훌륭하고 완벽하게 수행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걿지 않을 것이다. 

 

274e 그런데 글자의 경우에 이르러, 테우트가 말하길, "왕이시여, 이 배움은 이집트 사람들을 더 지혜롭고 더 잘 기억하게 해 줄 것입니다. 기억의 약이자 지혜의 약이 발견되었다는 말씀입니다."라고 했네. 한편 타무스가 말했네. "기술이 출중한 테우트여, 어떤 사람은 기술에 관한 것들을 산출할 수 있지만, 어떤 살마은 그것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떤 해로운 몫과 이로운 몫을 갖는지를 분간할 수 있소. 그리고 지금 그대는 글자의 아버지로서, 글자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 글자가 발휘하는 능력과는 반대되는 것을 말하고 있소. 왜냐하면 한편으로 이것은 기억에 대한 연습을 게을리 하게 함으로써 배운 사람들의 혼에 망각을 제공할 것이니, 그들은 글쓰기에 대한 신뢰로 인해 외부로부터 남의 것인 표시에 의해 기억을 떠올리지. 내부로부터 자신들에 의해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때문이오. 사실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 환기의 약을 그대가 발견한 것이오. 다른 한편, 그대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지혜로워 보이는 의견을 제공하지 진상을 제공하지는 않소. 왜냐하면 그대 덕에 많이 득게 되어 그들은 가르침이 없이도 많이 아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대개의 경우 사실은 그들은 무지하여 함께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니, 지혜로워지는 대신 지혜로운 보이게 된 탓이요.

 

276e 친애하는 파이드로스, 사실 그건 그렇다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들에 대해 진지할 때가 훨씬 더 아름답게 되는 경우도 있다네. 누군가 변증술을 사용하여 격에 맞는 혼을 얻는 한편, 이야기 쪽으로는 이야기들이 자기 자신들과 자기들을 심은 사람을 돕기에 충분하고 쭉정이가 아니라 씨앗을 갖고 있어 그로부터 다른 이야기들이 다른 풍토에서 자라 씨앗을 언제나 죽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하며,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인간에게 가능한 한에서 최대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이야기를 앎을 동반하여 씨 뿌리는 때는 말이지.

 

277b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것들 각각에 대하여 누군가가 참된 것을 보고, 모든 것을 그 자체로 규정할 수 있으며, 규정하고서는 다시 나뉠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부류에 따라 나눌 줄 알고, 또한 혼의 본성과 관련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꿰뚫어 보고, 각각의 혼에 본성상 들어맞는 부류를 발견하여,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확립하고 정돈하여, 다채로운 혼에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해 주는 한편, 단순한 혼에는 단순한 이야기를 해 주기 전에는, 가르침과 관련해서든 설득하는 것과 관련해서든 이야기들의 종류를 그 본성의 한계까지는 전혀 다룰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앞선 모든 말이 우리에게 밝혀 보여주는 것이지.

 

278a 반면에 글로 쓰인 이야기에는 매 주제에 관련해서 대단한 장난스러움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운문으로든 아닌 것으로든 대단한 진지함에 값할 만한 어떤 이야기가 글로 쓰인 적이 없으며, - 음속되는 이야기들이 물음과 가르침 없이 설득을 위하여 이야기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 말로 이야기된 적도 없고, 사실은 그것들 중 가장 훌륭한 이야기란 것은 아는 사람들의 기억거리였다고 생각하는 한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만, 그리고 배움을 위해 이야기된 것들에만, 그리고 사실상으로 정의로운 것들과 확연하고도 완전하며 진지함에 값할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네. 그는 이와 같은 자신의 이야기들이 적자(嫡子)와 같은 것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즉 우선 자신 안에서 발견된 경우에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가, 그다음에로는 그 이야기의 소산이자 형제가 되는 어떤 이야기들이 값어치에 걸맞게 적자와 같은 것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것들에는 작별을 고하지. 바로 이런 사람이, 파이드로스, 자네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나와 자네가 기원할 만한 사람인듯 하네.

 

 

 

 

 



플라톤의 『향연』, 플라톤의 향연을 읽지 않은 사람도 ‘플라토닉 러브’, ‘철인정치’ 라는 말은 들어 봤을 것이다.
 
플라톤은(기원전 427~347) 아테네의 귀족청년으로 정치적 장래가 보장된 젊은이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431~404)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플라톤의 꿈은 한바탕 꿈이 되고 만다. 스파르타가 세운 30인 참주정치에 의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28세의 미모가 수려한 청년 플라톤. 늙고 못생긴 소크라테스는 당대 아테네 젊은 청년들의 추종과 구애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의 사후, 그 제자들이 복음을 쓰고 서간문을 쓰고 순교를 하듯, 플라톤도 진리 그 자체라 일컬을 수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정신의 소유자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대학의 원조인 아카데이아를 만들고 우리가 아테네 학당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그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진리를 영원히 계승하고 싶었을 것이고, 사랑을 영구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진리와 지식에 대한 사랑, 철학은 그렇게 태어난다.
 
플라톤의 『향연』(서광사, 2016)은 기원전 384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극작가 시인 아가톤이 레나이아 비극에서 우승한 것은 자축하는 술자리에서 파이드로스(신화적관점), 파우사니아스(소피스트관점), 에뤽시마코스(의학적관점), 아가톤(시인의 관점), 아리스토파네스(희극작가의 관점) 그리고 소크라테스(예언자 디오티마의 대화) 등, 이들 6명이 에로스를 중심으로 한 사랑론을 펼친 산문이다. 그 시대에 사랑은 오직 ‘에로스’라는 어휘로 기술됐던 거 같다.
 
그들 여섯 사람의 사랑론은 모두 후대, 그리고 우리 시대 누군가의 사랑론을 낳게 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예언녀 디오티마와의 대화를 통해 설파한 사랑론은 왜 당시의 아테네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추종했는지 가히 알만한다. 이미 소크라테스는 요한네스 로쯔가 간파한 대로 ‘에로스-필리아-아가페’가 나눠질 수 없음을 직관한 듯하다. 무엇보다 사랑이 어떻게 구체화를 뛰어넘어 사랑 그 자체의 본질로 귀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을 ‘진리’와 동의어로 말한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인 아가톤에게 질문한다.(아가톤은 소크라테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였다. 알키비아테스가 술잔치 끝에 나타나 소크라테스에게 울면서 사랑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가톤은 당시 소크라테스를 추종하던 젊은이에게 질투를 유발시킨 장본인이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연구자들에게 게이설을 낳은 장본인이다)
 
Q1. “에로스가 어떤 것을 원하고 사랑한다면,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소유하지 않아서인가?” 소크라테스의 이 질문에서 사랑을 사고하는 방향과 문제설정이 달라진다. 질문으로 사랑을 다르게 사고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예언녀 디오티마에게 질문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얘기한다. 에로스가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라면 사랑에 대한 온갖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결핍이 된다고 말한다.
 
Q2. 소크라테스는 다시 아가톤에게 질문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인가?” 아가톤은 스승의 두 번째 질문에 놀라 “에로스는 추한 것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의 말을 빌려 “세상에는 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중간상태’ 있는 데, 바로 인간의 사랑은 선과 악의 ‘중간상태’에 있고, 빈곤과 풍요의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에로스로 지칭되는 사랑의 근원은 그의 어머니가 가난하고 그의 아버지는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Q3. 이번엔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대체 뭘까요?” 디오티마는 “에로스는 위대한 정령입니다. 모든 정령은 신과 필멸의 중간에 있어요” 라고 말한다. 요한네쯔 로쯔가 에로스에 구원이 필요하다고 한 부분과 맥락을 같이한다.
 
Q4.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다시 질문한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인간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디오티마가 대답한다.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번엔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이가 사랑에게 바라는 게 뭐죠?”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한다.
 
Q5. 벗이여, “아름다운 것들을 그가 소유함으로써 얻는 게 뭐죠?” 디오티마가 묻는다. “그건 대답하기 어렵지만 행복해지겠지요.” 그 질문 끝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왜 행복해 지기를 바라지요?” 이런 질문은 할 수가 없겠지요.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의 말을 긍정한다.
 
Q6. 벗이여, “모든 사람들이 항상 같은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특정 종류의 사랑을 떼어내 거기에다 전체에 속하는 것을 갖다 붙이고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같은 사랑인데 말입니다.
 
Q7. 벗이여, “사랑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인가요?”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반쪽도 전체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은 불완전하지만 사랑은 완전합니다.” 여기서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이 같지 않음을 말한다.
 
Q8. “그렇다면 사람들은 좋은 것을 사랑한다고 단적으로 말해도 될까요?” 사랑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9. “그렇다면 어떤 열성과 노력을 다해 사랑스런 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까요?” 벗이여, “모든 인간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잉태중입니다잉태와 출산은 신적인 것입니다필멸의 존재 안에 내포된 불사의 요소입니다정신적으로 임신한 자는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자와 사귀고 싶어합니다그들은 몸으로 낳은 자식보다 더 아름답고 불사적인 지식들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벗이여! 정신의 임신, 출산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Q10.“지혜로운 디오티마여!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먼저 한 사람의 몸을 사랑하여 그 안에 아름다운 담론을 낳아야 합니다이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식별하게 되면 사랑의 신비를 향해 올바로 나아가거나... 한 아름다운 몸에서두 아름다운 몸으로두 아름다운 몸에서모든 아름다운 몸으로모든 아름다운 몸에서아름다운 활동으로아름다운 활동에서아름다운 지식으로아름다운 지식에서 아름다움 것 자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저 특별한 지식으로 나아감으로써 드디어 아름다운 것 자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라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움 그 자체,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 그 자체를 나누다가 Q10 에서 일치시킨다. 아름다운 것이 ‘보고 믿는 신앙’이라면 아름다움 그 자체는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의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구체적인 것에서 보편으로 어떻게 진리와 사랑이 넘어갈 수 있는지  Q9에서 보여준다. 한사람의 아름다움에서 모든 사람의 아름다움으로...결국엔 사람에서 사랑으로 수렴된다. 아름다운 것이란 구체에서 아름다움이란 관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사랑스러운 것에서 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