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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나뭇잎숨결 2020. 2. 4. 08:30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의미'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立春大吉((입춘대길은 “입춘이 되어 크게 길하다.”는 뜻으로,

입춘(立春) 날에 ‘건양다경(建陽多慶: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과 함께

대문이나 대들보 및 마루기둥에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 춘첩(春帖)은 대표적인 입춘 행사의 하나다.
한자로 써서 대문의 좌우측에 여덟팔자 형태로 붙인다.

입춘첩이나 입춘축(立春祝) 또는 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하는데,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등

좋은 의미가 담긴 문구가 많다.


입춘첩은 옛날 궁중에서 입춘을 맞아 문신들이 지어올린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시구를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내건 것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입춘대길이란 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선조 26년(1593년) 승정원에서 ‘사변(임진왜란)이 안정되지 않아

춘첩자를 지어 바치지 못했으니 입춘대길이라는 넉자를 정성스럽게 써서

행궁(行宮) 안팎에 붙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고,

임금이 수용함으로써 춘첩자로 나붙게 된 것이다.


이는 조선 왕실에서 입춘대길이란 문구를 춘첩으로 사용한 첫기록이다.

그 시기 또한 송시열의 생몰 연대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새봄이 시작되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은 건양다경은 그 어원이 불분명하다.
두 가지의 유래설이 나돌고 있다. 1896∼1897년에 사용된 고종의 연호

‘건양(建陽)’ 유래설은, 당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집마다 건양다경이라고 써붙인 것이 시초라고 본다.


하지만 송시열과 비슷한 시기의 문신 미수 허목(1595~1682)의 글에서

인용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리지만 고증 자료는 더 필요하다.

입춘을 ‘들 입(入)’자가 아닌 ‘설 립(立)’자로 쓰는 것은

‘立’자에 ‘곧’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춘은 ‘곧 봄’이라는 뜻.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머지않으리’라고

한 퍼시 B 셸리의 시를 연상케 한다. 봄을 대하는 마음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바야흐로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입춘절’이 시작됐다.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크게 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