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How is Healing Accomplished?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How is Healing Accomplished?
1 치유하려면 병(病)이라는 환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지각된 병의 목적 The Perceived Purpose of Sickness
2 고통 받는 자가 고통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순간 치유가 이루어진다. 고통이 뭔가를, 뭔가 가치 있는 것을 그에게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누가 고통을 선택하겠는가? 그는 고통은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한 대가로 치르는 작은 가격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병은 선택이요 결정이기 때문이다. 병은 그것이 힘이라는 잘못된 확신 안에서 약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어나면, 진정한 힘은 위협으로 보이고 건강은 위험으로 보인다. 병은 신의 아들을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올려놓는 방법으로서 광기 안에서 잉태되었다. 신께서는 밖에 계시고, 맹렬하시고 강력하시며, 모든 권능을 신 자신에게만 집중하려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신께서 돌아가셔야만 신의 아들은 신을 이길 수 있다.
3 이 미친 확신 안에서 치유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그것은 신의 아들의 패배와 성부의 승리를 상징한다. 그것은 신의 아들이 인지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형식의 궁극적인 반항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가 그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자신으로부터 숨기려 하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그가 치유된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진다면, 그는 그가 얼마나 약하고 불쌍한 지를 입증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면, 그의 약함은 그의 강함이 된다. 이제 그는 신이 그에게 주려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었으며, 따라서 그의 창조주의 왕좌를 전부 찬탈하였다.
지각의 전환 The Shift in Perception
4 병의 무가치함이 인지되는 것과 정확하게 비례하여 치유가 일어난다. "이 안에 내가 얻을 것이란 전혀 없다” 라고만 말하면 그는 치유된다. 그러나 이 말을 하려면 그는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첫째, 결정은 마음의 것이지 몸의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병이 단지 잘못된 문제-해결 접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결정이다. 그것이 결정이라면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마음이지 몸이 아니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엄청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은 몸이 의사결정자라는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능,” “반사작용” 등과 같은 용어들은 몸에 비정신적 동인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실제로 이러한 용어들은 문제를 나타내거나 묘사할 뿐, 답이 아니다.
5 병은 마음이 어떤 목적을 위해 몸을 사용하려는 마음의 결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기초이다. 이는 모든 형식의 치유에 적용된다. 환자가 그렇다고 결정하면 그는 회복된다. 그가 회복에 반하여 결정하면 그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의사인가? 오직 환자 자신의 마음이 의사이다. 결과는 그가 결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물질들을 그에게 투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다만 그 자신의 선택에 형식을 제공할 뿐이다. 그는 그의 욕구에 유형의 형식을 부가하기 위하여 그 물질들을 선택한다. 바로 이것이 그것들의 역할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사실 그것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것들의 도움 없이도 환자는 그저 일어나서 “이건 내게 아무 소용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다. 즉시 치료되지 않을 형식의 병이란 없다.
6 이 지각의 전환을 위한 유일한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이것이다: 병은 마음의 것이요 몸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인지하는 것. 이 인지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 대가는 우리가 보는 온 세상이다. 이제 세상은 결코 다시는 마음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인지와 함께 책임은 그것이 응당 속해야 할 것에 놓여질 것이다 — 세상과 함께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은 지금의 모습이 아님을 보는 자. 그는 그가 보기로 선택한 것을 바라본다. 그 이상도 아니요 그 이하도 아니다.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또한 세상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 생각하였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 죄책감과 병으로부터 모두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이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방을 받아들이려면, 몸은 의미가 없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7 이 아이디어와 함께 고통은 영원히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창조에 대한 모든 혼동도 사라진다. 이 결론은 필연적이지 않겠는가? 어느 한 측면에서든 원인과 결과를 참된 순서로 배열하면, 배움이 일반화되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다. 한 참된 아이디어의 이전가치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다. 이 레슨의 마지막 결과는 신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 죄책감, 병, 고통, 재난, 그리고 모든 고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목적이 사라졌으므로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결과들도 또한 사라진다. 원인과 결과는 창조를 복제할 뿐이다. 왜곡이나 두려움 없이, 올바른 전망에서 볼 때, 원인과 결과는 하늘을 재확립한다.
신의 교사의 기능 The Function of the Teacher of God
8 환자가 치유를 위해 그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면, 신의 교사는 무엇을 하는가? 그가 그를 위해 환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을 바꿀 용의를 가진 자들의 경우 그는 다만 함께 기뻐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이 없으니, 그들은 이미 그와 더불어 신의 교사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그는 보다 구체적인 기능을 갖는다. 이 환자들은 그들이 병을 선택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그들은 병이 그들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 점에 대해 그들의 마음이 열려있지도 않다. 몸이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명령하며, 그들은 따른다. 그들은 이 개념이 얼마나 정신이상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약간이라도 의심을 한다면 치유되리라.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분리란 아주 실재이다.
9 그들에게 신의 교사는 그들이 잊고 있었던 다른 선택을 나타낸다. 단순히 신의 교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상기시킨다. 그의 생각은 환자가 진리로 받아들인 것을 질문할 권리를 요청한다. 신의 메신저인 신의 교사들은 구원의 상징이다. 그들은 환자에게 그 자신의 이름으로 신의 아들을 용서하라고 요청한다. 그들은 대안을 나타낸다. 그들은 마음 안에 신의 말씀을 간직한 체 축복 속에서 온다. 병든 자들을 치유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이미 그들을 치료하셨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러 온다. 치유하는것은 그들의 손이 아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그들의 음성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받은 것을 줄 뿐이다. 아주 부드럽게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돌아서라고 형제들을 부른다. 보라, 신의 아들인 그대여! 삶이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그대는 이것 대신에 병을 선택하려는가?
10 신의 상급 교사들은 단 한 순간도 형제가 믿고 있는 병의 형식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 모든 형식들은 같은 목적을 가졌으며 따라서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잊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너무도 속인 나머지 신의 아들이 고통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이 형제 안에서 신의 참음성(Voice)을 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그는 그 자신을 만들지 않았으며 따라서 신께서 그를 창조하신 그대로 남아있음을 상기시킨다. 환상은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그들은 인지한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진리는 형제들의 마음 안에 있는 진리에게 손을 뻗으며, 이로 인하여 환상은 보강되지 않는다. 이렇게 환상을 진리 앞으로 데려오는 것이지, 결코 진리를 환상에게 데려가지 않는다. 그렇게 환상이 쫓겨나는데, 다른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과 결합하는 한 참뜻(One Will)에 의해 그렇게 된다. 신의 교사의 기능은 이것이다 — 어떤 뜻도 그들 자신의 뜻과 분리되었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그들의 뜻도 신의 참뜻과 분리되었다고 보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