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적수업134

나뭇잎숨결 2017. 11. 22. 06:07

기적수업 134과 "용서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게 하소서"

 

 

 


1. 용서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자. 용서의 의미는 쉽게 왜곡되고, 정당한 분노를 부당하게 희생하는 것으로, 불공평하고 과분한 선물로 진실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으로 지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용서는 기이한 어리섞음일뿐이며, 이수없이 구원의 근거를 변덕에 두는 것이 보일 수밖에 없다.


2. 용서의 의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진실을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쉽게 교정된다. 용서의 대상은 거짓에 국한되어야 한다. 용서는 허상외에는 그 무엇과도 무관하다. 진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진실을 용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든 진실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법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비춘다. 여기에서 용서가 필요한가? 영원히 죄없고 선한자를 어떻게 용서하는가?


3. 진정한 용서를 해야할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의 주된 이유는 아직도 너는 허상이 아니라 진실을 용서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는 용서를 있는 것을 지나쳐서 보려는 시도, 즉 진실을 넘겨보고 허상을 참이 되게 해서 자신을 속이려는 헛된시도로 이해한다. 왜곡된 이 관점은 네가 자신을 죄 많다고 간주하듯이 너의 마음이 여전히 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반영할 뿐이다.


4. 너는 너의 죄를 실재라고 생각하기에 용서를 기만으로 여긴다. 죄를 진실이라 여기면서 용서를 거짓으로 믿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용서는 다른 것들처럼 진정 죄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한 용서는 진실을 거짓이라 말하며, 썩은 것이 마치 초원처럼 흠없고 눈처럼 희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러한 용서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그 용서는 명백한 잘못을 옳다고 보고 역겨운 것을 좋다고 볼 것이다.


5. 이 관점에서 보면 용서는 탈출구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숨기거나 부인하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지언정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한층 더 강조하는 표시일 뿐이다. 왜냐하면 용서는 진실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죄는 용서될 수 없다. 죄를 짓는다면 죄의 책임은 영원하다. 그들의 죄를 실재로 본다면, 용서받은 자는 조소거리요, 자신이 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정죄와 용서하는 자가 내리는 정죄로 두번 정죄된다.


6. 죄는 실재가 아니기에 용서는 자연스럽고 완전히 분별있는 것이며, 용서를 베푼사람은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용서를 받아들인 곳에서 용서는 고요한 축복이 된다. 용서는 허상을 묵인하지 않는다. 용서는 그저 웃으며 가벼이 허상을 보아 진리앞에 부드럽게 내려놓을 뿐이다. 그러면 허상은 거기서 완전히 사라진다.


7. 용서는 세상의 허상들 중 유일하게 진리를 상징한다. 용서는 허상이 무임을 보며, 허상이 보여주는 무수한 형태를 바로 꿰뚫어 본다. 용서는 거짓을 보지만 거기세 속지 않는다. 용서는 죄책감으로 미쳐버린 죄인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비명을 듣지 않는다. 용서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며, "형제여 그대가 생각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8. 용서의 힘은 그 정직에 있다. 그것은 너무도 올곧아 허상을 허상으로 보고 진실로 보지 않는다. 용서가 거짓을 대면했을때 잘못을 깨우쳐주고 단순한 진리를 회복시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용서는 있지 않는 것을 넘겨보는 능력으로 죄책의 꿈이 막아버린진리의 통로를 연다. 이제 너는 진정한 용서가 열어주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다. 네게서 형제 한명이 이 선물을 받는다면, 그 문이 네게 열리기 때문이다.


9. 너를 반기며 활짝 열려있는 진정한 용서에 이르는 문을 매우 쉽게 찾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의 죄를 어떤 형태로든 비난하고 싶을때, 네가 생각하는 그의 행위에 마음을 두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기만이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나 자신을 비난하겠는가? 라고 물으라.


10. 그리하여 너는 의미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형식의 대안들을 보게 되며, 너의 마음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고통과죄책감이 없는 진리안에서의 상태로 유지한다.거짓만이 정죄하려 한다. 진리 안에는 결백만이 있을 뿐이다. 용서는 허상과 진리사이에 네가 보는 세상과 그 너머의 세상사이에, 죄책감의 지옥과 천국 문 사이에 있다.


11. 모든 악과 증오와 공격의 꿈이 다리를 축복하는 사랑만큼이나 강력한 이 다리 건너편, 진리앞에 조용히 놓이게 된다. 꿈은 부풀리고 거칠게 몰아쳐, 꿈을 믿는 어리석음은 꿈구는자를 위협하도록 남겨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음을 이해하여 꿈에서 부드럽게 깨어났다. 이제 그는 탈출구가 전혀 없다고 느끼지 않는다.


12.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는 자신을 쫒아 온다고 여긴 괴물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돌담과 철문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는 두려움과 고통에 마음을 묶어두기 위해 만든 쓸모없고 육중한 갑옷을 벗어던질 수 있다.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그가 한걸음 성큼 나아가면, 별 하나가 뒤에 남아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길을 알려준다.


13. 너는 용서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세상은 용서의 의미를 지각하지 못하며, 네게 용서의 유익을 알려줄 안내자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서가 따르는 법과 용서가 반영하는 생각을 이해하게 해주는 사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용서는 너의 실재만큼이나 세상에 이질적이다. 하지만 용서는 너의 마음을 네안에 실재와 결합시킨다.


14. 오늘 우리는 더이상 결합의 시간을 미루지 않도록 진정한 용서를 연습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우리의 실재를 만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습은 우리를 따라 모든 형제들에게 그들과 공유하는 실재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주는 발자국이 된다.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오늘 15분씩 두차례, 용서의 의미를 이해하는 안내자와 함께 보내자. 그는 용서를 가르치도록 우리에게 파견되었다. 그에게 이렇게 청하자.


"용서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게 하소서"


15. 이제 성령이 지목하는 형제 한사람을 택해, 그의 죄를 하나씩 떠올려 목록을 만들라. 그 중 그 어떤 항목에도 집착하지 말고, 다만 세상을 죄의 모든 관념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의 죄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라. 형제에 대해 생각했던 그의 모든 악행을 잠시 숙고하면서, 그때마다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겠는가?"라고 자문하라.


16. 그의 죄로 여긴 네 모든 생각에서 그를 해방하라. 이제 너는 자유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 네가 용의를 내서 정직하게 연습에 임했다면, 고양되는 느낌과 함께 마음이 가벼워지고 깊고 분명한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남은 연습시간은 형제를 옭아매려 했지만 너 자신을 옭아맸을 뿐인 무거운 사슬에서 벗어남을 경험하도록 하라.


17. 용서는 하루종일 실천하는 것이 좋다. 너는 여전히 용서의 의미를 잊고 자신을 공격하는 때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네 마음이 허상을 꿰뚫어 보게 하면서 이렇게 말하라.


"용서는 있는 그대로 보게 하소서.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겠는가?

나는 이 사슬로 나 자신을 옭아매지 않겠다"


네가 무엇을 하든 다음을 기억하라.


"구 누구도 홀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홀로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