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의 자유론을 위한 변명
홉스의 자유론을 위한 변명
- 김용환
1. 자유주의자 홉스
1993년 9월 어느 날 필자는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차를 몰고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홉스가 묻혀 있는 올트 허크넬Hault Hucknall의 작은 교회를 찾아 나섰다. 안개의 나라 영국답게 그 날도 낮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홉스가 말년을 지냈던 카벤디쉬Cavendish 가문의 저택인 하드윅 홀Hardwick Hall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그 작은 교회로 가는 길은 짙은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죽은 철학자哲學者의 무덤을 찾아 나선 나에게 안개로 덮힌 길은 음침한 기분이 들게 했다. 도착했을 때 교회의 문은 닫혀 있었고 목사님 집에 가서 열쇠를 얻어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제단 앞에 섰을 때 발아래 무덤은 섬뜩하게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제단 위에는 그가 평생을 모셨던 카벤디쉬 영주들의 동상이 마치 충성스런 종 홉스의 무덤을 내려다보는 듯 정렬하고 있었다.
홉스의 무덤 앞에서 나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410여 년 전에 태어나 90여 년을 살다간 홉스의 삶이 마치 내가 살아 온 삶처럼 선명하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0여 년을 넘게 홉스의 철학에 빠져 있던 내게 그는 더 이상 죽은 옛날 철학자가 아니었다.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태어날 때 있었던 일부터 갈릴레오를 만난 일, 그리고 카벤디쉬의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유럽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학 여행을 하던 일, 파리에서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고 비판서를 쓴 일로 두 철학자 사이가 벌어진 일, 그리고 런던 大화재 이후 자신의 대표작인 《리바이어던》이 금서禁書로 지목되자 정치적으로 침묵을 지키며 죽을 때까지 주인집에서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나 번역하며 소일하던 그의 모습이 모두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그는 누구인가? 자유를 향해 인류가 진보해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홉스(1588∼1679)가 그 진보의 길목에서 한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홉스의 이미지는 절대 왕권주의자라는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군주가 필요하다는 이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자유와 먼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를 자유주의자로 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가 절대군주론을 주장했고, 의회주의자보다는 왕권주의자의 편에 섰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무의 가지만 보고 뿌리를 못 보는 것과 같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뿌리로부터 영양분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처럼 로크Locke, 흄Hume, 밀J.S. Mill이 자유주의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이들보다 앞선 세대의 홉스 같은 사람의 자유주의 정신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이 글은 홉스 철학의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는 자유주의 정신의 흔적을 찾아냄으로써 그를 명실상부한 자유주의자로 복원시키려는 시론이다. 즉 홉스의 자유론을 위한 변명辨明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학문의 자유: 학문의 나무 가지치기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지배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통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즉 기존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수단이 되기 쉽다. 개혁적인 교육 프로그램은 반대에 부딪치기 쉽고, 교육 담당자들인 교수나 교사의 보수적인 성향은 학생들의 새로운 욕구를 수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학문의 자유는 이상적인 목표이나 현실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권위주의에 속박되어 있기 쉽다. 학문도 권력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도 사실은 학문이 권력을 좇아 진리를 왜곡하고 세상에 아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때의 학문은 이미 자유로운 활동이기를 포기하고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학문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권력을 좇지 않아야 되고 세상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오히려 비판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15살에 옥스퍼드의 맥달렌 홀에 입학한 홉스는 5년 동안 학부 과정을 지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스콜라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유럽의 중세 후반기에서 근대 초기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권위주의는 교회나 성직자들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대학교육까지도 점령해 버렸다. 대학의 커리큘럼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무장된 인문학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고, 근대 과학의 엄청난 변화를 충분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홉스 역시 대학교육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홉스는 대학 교육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주로 고전 작품들을 읽거나 지도를 파는 가게에 들려서 세계 지도를 펼쳐 보는 일로 소일했다. 아마도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홉스는 학문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나 스콜라철학자의 권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들과 결별을 선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자의 기득권 옹호에 동원되는 학문과 결별하거나 지적 생산성을 잃어버린 전통과 단절할 때 그 대가로 학문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홉스는 깨닫고 있었다.진정한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홉스는 세 가지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문의 나무에서 죽은 가지를 쳐내는 일, 올바른 언어사용,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方法論의 모색이 그것이다.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홉스도 근대라는 새로운 지적 풍토에 적합한 학문의 나무를 새롭게 옮겨 심으려 했다.
나무를 옮겨 심을 때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내야 나무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듯이 학문의 나무에서도 학문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분과들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홉스가 한 일은 논리적 추론이나 증명이 불가능한 이론들을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일이었다. 인과적 관계causal relation를 가지고 있거나 바른 추론ratiocination에 의해서 도달한 지식만을 진정한 학문 또는 哲學이라고 보았다. 특히 종교와 철학을 엄격히 구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교와 신학을 위해 철학을 악용하고 있는 신들린 스콜라 철학의 미신은 마치 악령을 추방하듯 학문의 나무에서 잘라내야 할 부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암호metaphysical codes’로 쓰여진 스콜라 철학의 이론들도 학문의 세계에서 지워져야 할 대상들이다. 철학은 더 이상 ‘마제타의 돌’처럼 오랜 세월 해독解讀을 기다리는 그런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일은 학문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의사 소통을 하는 데도 중요하다. 말에 관한 한 홉스는 오캄의 유명론唯名論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 세상에 보편적인 것은 없고, 이름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름 붙여진 것들은 모두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말만큼 홉스의 유명론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말은 없다. 보편자(이데아, 신 또는 실체)의 실재성을 강조하려고 이상한 말들을 다 동원해서 사용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후계자들인 스콜라 철학자들의 무의미한 말의 잔치는 중세 말기 유명론의 등장과 더불어 철학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홉스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무의미한 말들을 일삼는 스콜라 철학자들과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말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는 수사학자들, 기독교 신학자들, 그리고 선동 정치가들이 이들이다. 언어를 악용하는 이들 네 집단은 혹세무민惑世誣民하거나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근대 과학 혁명을 목격하고 새로운 학문의 자유를 꿈꾸던 홉스가 볼 때 이들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들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위해 언어의 바른 사용을 강조하던 홉스는 과거 철학의 가장 큰 병폐를 방법론의 결함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냄으로써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1629년 그의 나이 41살 되던 해에 우연히 어떤 귀족의 집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알게 된 이후 그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용어들로 가득 찬 스콜라 철학을 단번에 날려 버릴 기하학의 방법은 홉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과 스콜라철학의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홉스는 확신했다.
분해分解와 결합結合의 방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홉스의 방법론은 갈릴레이가 물리학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가설-연역적 방법론의 철학적 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수학적 방법론,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 그리고 홉스의 분해와 결합의 방법론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낡은 권위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철학의 세계로 비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3. 욕망의 자유: 자유로운 개인
홉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두 번째 자유는 욕망慾望이나 욕구欲求의 자유이다. 그것도 개인의 욕망이나 욕구를 최대한 자유롭게 해방시켜 도덕의 세계에서 이들 욕망이나 욕구의 당당한 자리를 확보해 주려고 했다. 플라톤 이래 윤리적 합리주의 전통에서 보면 욕망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이차적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검은 말과 하얀 말로 상징되는 감정이나 욕망은 이성理性이라는 마부가 모는 마차에 매인 말들이다. 욕망은 이성의 노예상태에 놓여 있을 때만 안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조선 성리학이 이귀기천理貴氣賤을 말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지금도 이성은 귀하고 감정이나 욕망은 천하다고 보는 것은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홉스는 욕망의 자유로움을 철학의 기초로 삼은 철학자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목적이 자기보존에 있는 것처럼 인간도 자기보존自己保存 욕구를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 이성이나 합리성도 이 자기보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홉스는 “인간의 욕구나 정념은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전제와 인간은 전적으로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심리적 이기주의psychological egoism’와 욕망의 제1주체자는 개인이라는 추상적 개인주의를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하다. 추상적 개인주의個人主義란 개인을 “이익, 욕구, 목적, 필요성 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로 보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나 국가는 이런 개인의 ‘이익, 욕구’ 등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인공적인 수단, 또는 변경 가능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홉스가 마음에 두고 있던 추상적 개인은 어떤 존재인가? 조금 범박汎博하게 말해서, 인간은 움직이는 욕망 덩어리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전기적 자극이라는 동력을 통해 움직이되 정해진 궤도 없이 어디로든 달릴 수 있는 무궤도無軌道 전차처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전차와 같다. 베이컨의 말처럼 욕망cupiditas과 욕구를 가진 인간은 ‘벌거벗은 큐피드’와 같다. “자연이 운동을 통해 활동”하는 물체들로 이루어졌듯이 인간은 몸이라는 물체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활동하는 유기체일 뿐이다.
갈릴레이가 자연의 물체가 운동하는 힘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했듯이, 인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작은 시작을 ‘의도conatus, endeavor’라고 부른다. 물리학적 개념인 코나투스를 홉스는 인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의도는 심리적 운동이며 그 운동이 대상을 향할 때 욕구appetite 또는 욕망desire이라 부르고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운동은 혐오嫌惡, aversion라고 부른다. 이 욕망과 혐오가 특정한 대상들과 관계를 가질 때 감정emotion 또는 정념passion으로 표출된다.
욕망은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대상도 때와 장소에 따라 욕망을 갖게 만들기도 하고 혐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대상들은 모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욕망은 정해진 가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욕망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운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감정에 충실하고 욕망 충족을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홉스적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은 최소도덕最小道德, minimum morality이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던 최대도덕maximum morality을 대신해서 최소도덕만으로도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성이 헤게모니를 쥐고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사회의 안전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성의 도움을 받아 욕망이 적절하게 자기 통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조화로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성의 주된 기능은 욕망을 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안내자 역할에 있다. 즉 이성은 타산적 기능을 본질로 삼고 있다.
욕망이 도덕과 행위의 세계에서 당당하게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 홉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가? 영국 경험주의經驗主義 철학과 자본주의資本主義의 전통에서 보면 그 의미는 상당하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홉스가 그리고 있는 인간, 개인의 모습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다.
욕망의 극대화, 쾌락의 질적, 양적 확대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형은 바로 홉스적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억제나 억압보다는 자유로운 발산發散과 충족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온 자본주의는 홉스적 인간형을 모델로 해서 발전시킨 이념이다. 로크, 흄, 벤담과 밀 등 영국 경험주의 철학과 쾌락주의快樂主義 전통, 그리고 공리주의 이론이 배경으로 삼는 인간형은 기본적으로 홉스가 마음에 두었던 욕망 덩어리이자 합리적 이기주의자였다.
4. 자유와 필연의 양립 가능성
홉스 자유론의 세 번째 주제는 자유와 필연必然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자유에 대한 홉스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자유란 반대가 없음을 의미하며, 반대란 운동의 외부적인 방해를 의미한다. … 자유와 필연은 일치한다.” 이 인용문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자유를 소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과 자유와 필연이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아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홉스의 이런 말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실 자유와 필연의 문제는 17세기 초반 대부분의 과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논의되었던 문제였다.
갈릴레오가 물리학의 이론을 통해 자연이 엄밀한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때 스콜라 철학에 익숙한 로마 교황청의 충격이 어떠했는지는 잘 아는 바와 같다. 자유의 자리는 필연으로, 신의 섭리와 목적의 자리는 내재적 필연의 법칙法則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근대 과학자들이 주장했을 때 교회는 종교 재판의 위협을 통해 이들 과학자에 응수했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인간 원죄의 근원을 자유의지에 둔 기독교 신학은 자유의지의 확실성을 더욱 확고하게 옹호해야 했다. 필연성에 바탕을 둔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론自由意志論의 대결은 데카르트 이후 근세 철학자들 모두의 관심사였다. 자연 세계는 필연적인 법칙이 지배하고 인간의 마음은 자유로운 의지가 지배한다는 이원론은 데카르트가 생각해 낸 절충안이었다. 마음과 몸,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원론적 실체관實體觀이 낳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그러나 홉스는 이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홉스가 선택한 방법은 결정론의 입장에서 의지의 자유를 부인하는 동시에 인간의 행위는 자유롭다는 역설적 방법이었다. 홉스가 볼 때 자유의지와 필연성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없으며, 오히려 자유와 필연성이 일치한다. 이런 주장은 예정론자豫定論者인 칼빈주의자들의 주장과 잘 어울린다. 결정론적인 신의 섭리와 예정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자유를 인정하는 칼빈주의자들은 아르메니안들이 인정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론을 비판한다.
홉스에 따르면, 초대 기독교인들이나 바울은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느님의 거역할 수 없는 의지로부터 나온다고 바울은 생각했다. 그러나 후에 로마 교회의 신학자들은,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의지를 신의 의지로부터 독립시키고 인간의 의지가 모두 자유롭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브럼홀의 주장도 이런 전통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홉스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바울의 생각이 더 정확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홉스는 강변强辯하고 있다. 여기서 홉스가 정확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강조하고 구별하는 것은 ‘의지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 사이에 놓여 있는 차이점이다. 홉스가 부인한 것은 의지의 자유이지 행동의 자유는 아니었다.
홉스의 정념론情念論에 따르면, 의지는 우리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활동의 한 가지 현상이다. 그리고 정신적 활동이란 자극과 반응이라는 인과적 연속 과정과 다르지 않다. 홉스의 설명에 의하면, 의지란 숙고deliberation가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일어나는 정신활동의 마지막 욕구나 혐오의 감정을 뜻한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마지막 인과 운동이다. 그리고 의지는 무엇을 할 수 있거나 또는 하지 않을 수 있는 두 가지 의지로 구분된다. 이 의지는 모두 자극에 대한 심리적 반응으로서 인과적 필연성의 지배를 받는다. 반면 의지에 의해 결정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거나 아니면 중지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가 인간에게는 있다.
즉 정해진 의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의지의 필연성은 자유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동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행동의 자유만이 홉스가 인정한 자유이며, 이 자유는 필연과 양립할 수 있다. 자유와 필연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홉스는 물과 물길의 상관 관계와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물은 자연스럽고 또 자유롭게 아래로 흐른다. 물의 흐름은 자유이지만 그 물이 물길을 따라 반드시 흘러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둑이 있어서 물이 그 둑을 넘지 못하는 것은 물에게 방해물이며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물의 자유는 인간의 행동의 자유를 의미하며, 물길과 강둑의 존재는 자유를 구속하는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우면서도 필연의 질서를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따라서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글씨를 쓰거나 말거나 또는 말하거나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가가 아니라, 쓸 수 있는 자유와 그만 둘 수 있는 자유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나오는가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