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 성녀 크리스티나 / 사보이나의 복녀 루도비카 수도자
축일:7월24일 성녀 크리스티나 / 사보이나의 복녀 루도비카 수도자
축일:7월24일 성녀 크리스티나 Santa Cristina di Bolsena Martire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교도였다. 열심한 하녀 신자에게서 종교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그의 부친은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딸에게 신앙생활을 포기하도록 온갖 고문으로 괴롭혔다.
마침내는 성녀의 몸에 무거운 바위에 메달아 호수에 빠드렸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성녀는 죽지 않았다.
라시움의 볼세나에서 그녀를 공경하는 전설은 너무 단순하여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성은 희박하지만 유명한 재판과 기적에 관한 전설에 산재해 있다. 볼세나에는 초기의 크리스천 무덤들이 남아 있으나, 여기가 그녀가 묻힌 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크리스티나 아니치(Christina Anicii)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며
투스카니의 볼세냐 호수 근처에서 순교하였는데,
성녀에 대한 이야기는 띠로 지방의 성 크리스티나에 대한 이야기와 잘 혼동되어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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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7월24일(9월9일)
복녀 루도비카는 1462년 사보이나의 아마데우스 공작 가에서 태어났다.
클라라 회원이 될 은혜를 미리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그녀는 사보이아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의 9세(Amadeus IX)의 딸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훌륭히 자랐으니, 특히 뛰어난 영적 지위에 있었다.
18세 때에 그녀는 위고 드 샬롱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그들의 집은 마치 수도원처럼 거룩하였고 부부생활은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그녀는 최초로 자선함을 설치한 인물로 기록된다. 자선함에 모인 기금으로 그녀는 고아와 과부 특히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이제 완전히 세속과 결별하였다.
그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을 입고 성무일도를 바쳤으며, 밤중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오르브의 클라라 수녀회에서 살게 되었다. 비록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녀는 수녀원 내의 부엌일을 비롯하여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철저히 겸손하고 거룩하게 살다가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소서” 하며 운명하였다. 그녀는 1839년에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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