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 노무현 시대의 좌절
서점에 가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린 책들이 서점 메인칸에 많이 놓여있더군요. ------------------ 책을 읽다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풋풋하고 진솔한 정서를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분이 갖고 있는 정치철학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치철학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대학에서 철학을 갖고 있는 흘륭한 정치인을 길러내는 교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란 말이 떠오릅니다.
내 아내 양숙씨는 고향 진영의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사이다. 71년 제대를 하고 돌아와 보니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 취직을 해 있던 양숙씨가 마을에 와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해 병구완차 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가끔 만나면 마음이 설레곤 했던 처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에도 몇 번 만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땐 워낙 콧대가 높아 말도 제대로 붙여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양숙씨를 제대 후 고향 마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고시 공부의 와중에서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책을 빌려주고 받고 하다가 나중에는 자주 만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오랫 동안 시치미를 뚝 떼고 딴청을 부렸다. 1년간을 그렇게 나의 애를 먹인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처음 그렇게 힘이 들 때는 아내의 콧대를 원망했으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일이 안 풀렸던 것 같다. 아내를 처음 몇 번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결혼해 달라고 졸라댔으니, 일이 잘될 턱이 없었다. 지금 다시 아내와 연애하라면, 결혼 따위의 말은 입밖에도 내지 않고 오히려 아내 쪽에서 결혼하자고 조르도록 할 수 있을 텐데.....
우린 그래도 남들은 흔히 갖기 어려운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둑길을 걸으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함께 돌아 다녔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 같은 그 속을 거닐며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아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여성으로 알았었다. 그러나 내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나의 주인이 되어 버렸고, 주인으로 군림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꿈을 쫓던 그때의 처녀 양숙씨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 했던 훈육 주임을 닮았다고나 할까......
연애를 한창 하던 시절의 기억으로 잊지 못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동네 앞 들판 건너 산기슭 토담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여름이 끝날 무렵이라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왔었다. 그 때 마침 양숙씨를 만나 그날도 둑길을 함께 걸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누가 보았는지, 무현이랑 양숙이는 담요를 갖고 다니면서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져 변명도 하지 못하고 망신을 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2년 가까이를 커피 한 잔 값 안 들이고 순전히 맨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다 보면 아내가 마귀 할멈처럼 미워지다가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흐뭇해진다.
고향에는 아직도 그 둑길이 그대로 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나는 아내와 함께 그때의 기분을 내보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좋은 둑길을 요즘 청년들이 별로 이용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기는 이젠 농촌에 그 둑길을 걸을 청년들이 남아 있지도 않지만......
-노무현, < 여보 나좀 도와줘> 중에서
유시민: 중앙일보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노 고문께서는 스스로를 중도 성향으로 평가하셨던데 객관적 지표를 보면 매우 진보적인 성향으로 나옵니다.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평가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민주당의 지난번 대선 공약과 각종 현안에 대한 당론을 거기다 넣으면 얼마쯤 나올까요? 저하고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유시민: 노무현이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에 가장 근접한 후보라는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노무현: 한 두 개, 점수를 아주 많이 먹었을 겁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단호하게 폐지하자는 입장이거든요. 그 한 개가 점수를 많이, 소위 왼쪽으로 많이 먹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진보적이라거나 좌익적이라고 봤는지 모르겠는데, 국가보안법은 실용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문명국가로서는 수치스런 제도다. 저는 그래서 단호하게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유시민: 민주공화국의 기본 가치에 입각해서 그런 답변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노무현: 그렇지요. 그런데 그런 것 때문에 제가 아주 과격한 진보주의자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는데,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우편향된 탓도 있겠죠?
- 유시민(시사평론가), 인터뷰 "인간 노무현, 흔들리지 않는 게임의 법칙" 중에서
우리 정치사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남다른 색깔을 갖는다. 고졸 출신 사법고시 합격, 30대 중반을 넘어 인권변호사에로의 변신, 5공 청문회에서의 조리 있고 당당한 질문, 부산에서의 연이은 낙선, 그러고도 당선자보다 더 당당하게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그의 불가사의한 정치 역정, 조선일보와의 전쟁, 그리고 유력한 대선 후보.. 그는 정말 남다른 색깔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노무현에게는 언제나 상반된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그 평가는 동전의 앞뒤를 뒤집는 얄팍한 정도가 아니라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처럼 아득한 거리를 가진 대척적(對蹠的) 평가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1만 명에 가까운,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조차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노무현은 너무 진보적이라 위험하다고 경계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노무현도 어쩔 수 없는 보수 정치인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어째서 이런 일이 한 사람을 두고 공존할 수 있을까? 혹시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의 어떤 척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노무현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사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책 한 권에 이르는 조망을 시도하였다.
지금 한국 정치판은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으로 뜨겁다. 당내에서는 이른바 대세론, 그리고 개혁후보 연대론 등으로 시끄럽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노무현이 있다. 고졸 학력, 2번의 당선과 4번의 낙선.. 외적인 조건으로 보면 게임이 안 된다. 그런데도 노무현은 대선 주자 중에서도 1,2위를 다투고 그를 중심으로 개혁후보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노무현 대안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중이고,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1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전국을 누비며 자발적인 선거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당내에서의 취약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네티즌이 뽑은 대통령' 1위, '증시전문가가 뽑은 경제 대통령' 1위, '시민운동가가 뽑은 대통령' 1위, '현직 기자가 뽑은 대통령감' 1위, '희망을 주는 인물' 1위 등 각종 전문가 집단이 뽑는 대통령감으로는 늘 1위를 달리는 이 불가사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노무현을 둘러싼 여러 가지 담론들 중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이 책은 그것을 밝히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왜 노무현인가?"라는 모두(冒頭)를 통해 천정배 의원(민주당)이 지금 왜 우리에게 노무현이 필요한가에 대해 짧고도 분명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고,
1부 <인간 노무현>에서는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획을 시도하였다. 시사평론가 유시민과 가진 "인터뷰"는 이미 알려진 부분들이나 정책 각론에 대한 질문들은 가능한 한 피하고, 노무현의 인생과 정치철학에 영향을 끼친 부분들과 큰 틀에서의 정치적 이념들을 확인해 보았다. "심리학자가 본 노무현"은 정신심리학자 정혜신이 노무현의 심리기제 분석을 통해 노무현이 무모한 바보인지 배짱 좋은 남자인지를 살펴보았고, "아들이 본 노무현"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아버지 노무현과, 주요한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 가족의 눈에 비쳐진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무현의 "자전기록"에는 그 동안 부분적으로 밝혀졌던 노무현의 생각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다.
2부 <정치인 노무현>에서는 정치인 노무현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획을 시도하였다. 정치평론가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정치비평"은 한국 정치사의 흐름과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면서 그 가운데 노무현의 정치 행보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중앙일보 강민석 기자의 "현장비평"에서는 정치부 기자의 눈을 통해 정치 현장에서 만난 그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들과 그의 정치적 약점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담고 있다. 최근 노무현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영화인 문성근의 "인물비평"에서는 인간 김대중이 해결하지 못한 한들을, 문익환 목사가 꿈꾸던 희망들을 어떻게 노무현이라는 현실 정치인을 통해 풀어갈 수 있는가 들려주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의 "언론비평"를 통해서는 노무현이 조선일보와 싸우는 이유를 중심으로 노무현의 언론관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으로 조망해보는 기획도 마련하였는데, 이광호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편집위원장의 "노무현 비판적 읽기"가 그것이다. 이 글은 노무현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을 짚어 보면서, 노무현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3부 <노무현 읽기>를 통해서는 노무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읽을거리들을 제공한다. "만평 노무현"에서는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노무현 캐리커처와 신작만평, 그리고 노무현을 주제로 한 장봉군 화백의 신작만평과 한겨레그림판의 만평들을 담았고, "무협 노무현"을 통해서는 10·26 사태 이후 지금에 이르는 현대 정치사와 노무현의 모습을 무협지라는 재미난 그릇으로 담았다. 그리고 노무현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직후 {고시계}에 기고한 글과, 4·13 총선 직후 {시사저널}에 기고한 기고문 등 노무현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주요 기고문들이 "노무현 글모음"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고, 노사모 회장 명계남의 "노사모"는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 활동모습들을, "네티즌 글모음"에는 노사모와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중심으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끝으로, 노무현을 더 깊이 연구할 사람들을 위해서 연구자료를 부록으로 묶어 놓았다.
노무현 고문 경선 캠프의 안희정 씨는 노무현 고문을 '교과서적인 상식을 가진 원칙주의자'로 정의하고 있다.노무현 고문을 어렴풋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 고문의 다소 튀는 언행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안희정 씨는 한가 지 일화를 소개했다.
"'이용호(李容湖)게이트'가 정치권을 흔들 때에 참모들은 '부패 제로(0)의 나라'라는 공약을 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고문은 '못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참모들이 '왜 못 하냐'고 다그쳤지. 다들 부패청산을 외치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노무현 고문의 설명은 간단했습니다.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겁니다. 그는 '나의 다짐을 얘기하는 것은 몰라도 공약으로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참모들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1997년 한보청문회 때도 몸통으로 지목되었던 김현철(金賢哲)씨를 두둔하는 듯한 글을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한보 게이트가 김현철이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냐. 기업의 신뢰도나 수익성을 평가하지 않고 관치 금융이 이뤄지던 시장구조 때문이 아니냐. 김현철이 하나를 때려잡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게 당시 노무현 고문의 생각이었다. 당시의 여론이나 사회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과감히 자기 생각을 기고했다.
노무현 고문이 인기나 대세, 또는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원칙대로 밀어 부치는 스타일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강민석(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현장비평 "가장 상식적인 원칙주의자" 중에서
쉽지만은 않은, 힘겨운 선거임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점들까지 충분히 감안하고 신중하게 검토를 한 끝에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출마한 것이었다. (중략)
많은 분들이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치열한 현실이다. 운전면허시험에 떨어져도 기분이 상하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국회의원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다가 막바지에 나타난 뜻밖의 변수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니, 그보다 참담한 기분도 어디 있을까? 떨어짐이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것도 어느 정도의 이야기지, 연이은 낙선은 참으로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패배의 고통이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을 때 사람들은 '당선보다 아름다운 패배', '바보 노무현을 위한 변명' 등의 수식어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 또한 '농부가 어떻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까맣게 숯 덩이가 되어버린 나의 속내까지 달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이번이야말로 정치를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아내와의 오랜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 노무현, 자전기록 "내가 선택한 길을 내 뜻대로 걸었다" 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책, <노무현 시대의 좌절>----------------------------------
'노사모'로 집약되는 시민사회의 열풍을 업고 집권한 노무현정부는 탄핵사태, 대연정 제안, 한미FTA 타결 등의 논쟁 한가운데 있었지만, 개혁과 진보를 염원하는 대중의 열망을 한국사회에 착근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는 단지 정권 담당자만의 책임을 넘어선 범 진보개혁진영의 실패이기도 하다고 필자들은 주장한다. 이명박정부의 낮은 지지율에도 전혀 올라가지 않고 있는 진보진영의 지지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책은 찬란한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노무현시대의 구체적인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권위주의 타파, 정경유착 근절, 인위적 경기부양 자제처럼 긍정적 평가를 받는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실패했다고 여겨진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기존 평가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념적 판단에 머물렀다. 노무현정부 출신 인사들은 보수언론의 왜곡 때문에 실패했다는 자기변명에 매달리기도 했다. 이에 비해 이 책의 필자들은 우선 성장과 복지의 동시 충족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대외정세에 대한 대응, 정권의 주체적 역량을 구체적 준거로 하여 차분한 분석을 시도한다(조형제·김양희 제1장).
노무현정부는 집권초 국정목표를 성장과 복지의 동시실현으로 내걸었으나 둘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다. 또한 세계체계 내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중견국가'적 위상을 감안한 대외정책을 꾸려야 했음에도 '지나친 의욕'과 '외교적 수모'를 반복했다.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세웠으나 이라크파병을 단행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자수성가형 리더십에 함몰돼 의견수렴에 인색했고 선거과정에서 급조된 참모진은 조급한 업적주의에 머물렀다. 이들을 뒷받침해줄 범 진보개혁세력 또한 별다른 정책적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장위주의 한미FTA 타결을 일방적으로 추진했고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규제완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등의 일관성없는 정책은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피로와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결국 노무현정부뿐 아니라 범 진보개혁세력도 모두 실패했다고 필자들은 평가한다.
노무현정부는 중도·보수적 유권자까지 지지기반을 넓히는 '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 정치전략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정분리, 한미FTA의 일방적 체결에서 드러나듯이 진보개혁세력을 주변화·균열화시킴으로써 지지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렸고 결국 산토끼를 잡기는커녕 집토끼만 잃는 총체적 지지기반의 붕괴를 경험해야 했다(이남주 제2장).
노무현시대의 대표 외교정책인 '동북아시대구상'은 유럽연합을 모델로 했으나 이는 유럽과 다른 역사적 환경을 고려치 않은 모방에 불과했다. 특히 동북아를 둘러싼 냉혹한 국제현실을 과소평가한 반면 한국의 역량은 과대평가했다. 또한 협력범위를 '동북아'에 한정할지 아니면 '동아시아'로 넓힐 것인지, 경제와 정치외교의 협력수단 중 어느것에 중점을 둘 것인지가 정립되지 못한 채 오락가락했다(김양희 제3장).
김대중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은 남북정책은 군사적 신뢰구축까지 진일보하지 못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군비증강을 선택했으며 동북아론과 한미동맹, 한미동맹과 자주국방, 공동안보와 자주국방이라는 모순 덩어리의 정책들을 남발했다(구갑우 제4장).
노무현시대에 한국경제는 낮은 성장률, 성장잠재력 약화와 사회양극화 심화라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시대변화에 따라 수출중심에서 내수확대의 전략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노무현정부는 내수신장을 천명했으나 실질적인 내수진작용 정책들은 부재했으며 오히려 수출기업에 유리한 저금리·환율방어 정책을 시행했다. 결국 한국경제는 국내의 경기부진과 수출과 내수 사이의 양극화현상, 금융버블의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전병유 제5장).
필자는 노무현정부를 '복지 프렌들리' 정권이라 정의하며 분배·복지정책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사회보험적용률을 높이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도 대폭 늘렸으며 장기노인요양보험,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했다. 또한 '보조'의 차원을 넘어 사회투자적 전략에 입각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근로장려세제, 아동발달 지원계좌, 희망스타트 등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다수 도입됐다. 그럼에도 노무현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높아지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했는데 이 원인을 필자는 임기말에 이르러서야 제시된 뒤늦은 비전2030과 대국민 홍보부족에서 찾는다(양재진 제6장).
노무현정부의 노동정책은 사회통합을 기치로 내세웠으나 종내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화, 노동임금의 양극화, 근로빈민(워킹푸어)의 증가처럼 노동의 위기로 귀결되고 말았다. 노정갈등의 격화와 사회적 대화가 파탄난 상황에서도 개혁조급증에 휩싸인 나머지 나홀로 개혁을 추진하다가 결국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기능에만 의존하게 돼버렸다. 필자는 유럽식 사회시장경제의 도입과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체제 재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박태주 제7장).
노무현시대 내내 폭등한 땅값과 집값은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지목되곤 한다. 그러나 조세형평성과 시장투명성을 제고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기반을 닦는 데 노무현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기여한 면이 있다. 다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감독과 규제 강화정책이 부동산가격이 이미 폭등한 후에야 시행됐고 이 또한 조세·건설정책과 긴밀히 병행됐어야 실질적 효과를 낳을 수 있었음을 필자는 지적한다(정준호 제9장).
지역정책에서 노무현정부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소득분배 개선과 사회통합의 증대가 효율성과 국가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고자 한 의도였다. 그러나 지역차원의 풀뿌리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시행된 정책은 오히려 지역내 토호의 발흥과 성장연합의 강화를 낳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개발 열풍으로 땅값은 폭등했고 토목·건설사업의 소음과 먼지가 전국을 휘감았다. 지역구성원의 참여와 세밀한 중장기적 유인체계 설계를 통한 지자체의 내생적 발전경로를 포기한 채 노무현정부는 결국 '신개발전략'으로 회기해버렸다고 필자는 비판한다(정건화 제10장).
앞서가는 일본과 따라오는 중국에 끼인 이른바 쌘드위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은 노무현정부의 핵심과제였다. 따라서 과학기술보좌관직 신설과 과학기술부 장관의 부총리 승격, 정책콘텐츠의 구체화처럼 과학기술중심의 사회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노무현정부는 과학기술개발이 상업화되면 이를 다시 기술개발에 재투자되는 식의 순환구조를 이루고자 했다. 특히 연구개발사업에 10조원가량을 투여는 SCI논문 게재순위, 국내특허 출원순위, 기술수출액, 세계일류상품수 증가 같은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후보시절 7퍼센트 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정부는 낮은 성장률에 조급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학과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소홀했다. 국가출연연구소와 대기업 투자에만 집중했고 결국 눈앞의 성장에 국가혁신체제가 포획돼버린 꼴이었다(김석현 제11장).
교육부문에 있어서, 노무현정부는 시장 의존적 교육개혁을 극복함과 동시에 과거 '권위적 공공성'을 '민주적 공공성'으로 전환하려 했다. 이를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 교육복지확대와 대학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도출에 실패했고 사교육문제를 되레 방과후 학교에 학원강사를 초빙하는 것 같은 대체 사교육으로 해결하려 했고 결국 사교육 의존성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처럼 양질의 공공고등교육체제 확립의 실패는 국민적 지지확보의 실패로 이어졌다(장수명 제12장).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모색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때리기'만으로 진보의 정체성을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지금 진보개혁진영 앞에는 세계화와 분단체제의 동요라는 환경에서 작동가능한 비전과 노선을 바탕으로 폭넓은 연합을 구축해야 할 정치적 과제가 놓여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현실에 부적합한 일국주의적·계급주의적 전망을 넘어선, 지역과 민족국가 그리고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좀더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복합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히 ' 중도'적 경제조직과 제도를 미시적 기초로 하는, 다시 말해 시장과 기업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다양한 혼합형 조직들이 함께 공존하는 '한반도경제'를 주창한다.
이를 위해 남한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협동조합 같은 혼합형 조직체와 사회적 기업의 비중을 높여가야 하며, 북한은 시장친화적 기업형 조직체를 늘려야 한다. 이처럼 남북한의 총체적 경제개혁과 통합을 지향하는 한반도경제론을 진보의 새로운 경제체제로서 필자는 명명한다. 물론 이런 방향제시가 유일한 해법이라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진보의 길은 복수일 수 있으므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한반도경제론 같은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지속해야 한다고 필자는 역설한다(이일영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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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음악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