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시인 원재훈이 쓴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누군가의 내일이다>를 읽으면서 얼마전에 훈련도중 쓰러진 두 젊은 군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꿈은 어떻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얼마전에 나온 훈련도중 쓰러진 두 젊은이를 생각하면, 죽기도 전에 생을 포기한 이들에 대한 연민은 차라리 분노다. 커트 코베인, 빈센트 반 고흐, 체 게바라, 이황, 오드리 헵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49인의 마지막 말을 들려주는 책.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순리이듯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처럼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그 어떤 가르침 보다 더 아픈 회초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남긴 마지막 말을 모은 것으로, 인물들과 그들이 남긴 말의 성격에 따라 총 3부로 구성했다. 제1부에서는 예술가, 제2부에서는 사상가, 정치인, 제3부에서는 영화배우, 종교인 등의 마지막 말을 들려주고 있다. 또한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몰개성적인 우리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으며,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제3부에서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의 희생자들과 붕괴된 탄광에서 42시간을 견디다 죽어간 광부들의 마지막 말을 담아 살아남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치열한 삶,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마지막 말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여행을 출발하도록 격려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나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해골을 남길 것 같아요 - 코코 샤넬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 로맹 가리
*타인과 함께할 수 없었던 이 생애는 종말에 이르러서도 후회뿐이다.
이젠 한 자루의 펜도 무겁다 - 헨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기억해주기 바란다.
서서히 소멸하는 것보다 한번에 불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 커트 코베인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 칼로
*지금 들어가야겠어, 안개가 피어오르잖아 - 에밀리 디킨슨
*초록색으로 해줘! - 조르주 상드
*저는 천하의 남자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황진이
*꿈속 넋이 만약 자취가 있다면 문 앞 돌길이 모래로 변했을 거예요 - 이옥봉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 산도르 마라이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나에게 십오 분씩만 나눠주시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신이여, 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 - 애드거 앨런 포
*참, 이런 수모를 당하며 살면 무어 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 김소월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어 - 빈센트 반 고흐
*좀더 빛을! - 괴테
*박수를 치게, 친구들. 희극은 끝났네 - 베토벤
*나는 지금 혁명의 불멸성을 생각하고 있다 - 체 게바라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대장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 형가
*우희야, 우희야! 널 어쩐단 말이냐 - 항우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대신 좀 갚아주게 - 소크라테스
*어째서 슬퍼하느냐? 너희는 영혼의 불멸을 의심하는구나 - 카누스 이우리우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으로 내놓아 사람들이 나의 빈손을 볼 수 있게 하라
- 알렉산더 대왕
*브루투스, 너마저? - 카이사르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소명을 다했습니다 - 넬슨 제독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와 헤어지고 멀어지며 나누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석가모니
*행여 말하지 말라, 내가 왔다갔다고 - 혜능
*고향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구나. 갈 길 뚜렷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 충지
*태산은 무너지려 하고 기둥은 쓰러지려 하며 철인은 병들고 지치는구나! - 공자
*내 마음이 빛이거늘, 무슨 말을 또 하란 말이냐? - 왕수인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 - 이황
*사람을 채용하는 일에 결코 편중됨이 없도록 하라 - 이이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날은 저물었구나 - 성삼문
*내가 죽거든 관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말라. 먼 길 가기 어렵다 - 조광조
*이 나라가 오백 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한 날에 선비 한 사람 죽지 않는다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느냐 - 황현
2009 봄날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천천히 말을 하세요 - 오드리 헵번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태양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불행한 게 아닙니다 - 헬렌 켈러
*이제 기쁜 마음으로 희망에 차서 간다 - 스콧 니어링
*지하철 사고가 났어. 약속 시간 못 지킬 것 같아 - 대구 지하철 사고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는다 - 여선영
*벌써 천국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가까워 - 심재호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 마더 테레사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울지 말고 기도하세요, 아멘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별로 고통스럽지 않단다. 그냥 천천히 잠이 드는 것 같아 - 마틴 톨러 주니어
*내 장례식 때는 꼬마 친구들이 많이 찾아올 거야 - 안데르센
*나는 주님의 힘을 믿네 - 김대건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 전태일
*자유여, 영원하라! - 한스 숄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몰랐던 한 남자와 결혼했고 행복했다 - 데이너 리브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 이응태 부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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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가에 서서
-원제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들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선다.
아주 잠깐 그 사람의 얼굴을 떠 올리고 강물을 바라본다.
미워하기엔 너무 작은 얼굴
내 마음엔 어느새 강물이 흘러들어와
그 사람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준다
그래, 내가 미워했던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얼굴에 끼어있던 삶의 먼지, 때,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아픔이아니었을까?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상처가 아닐까?
임진강가에 서면 막 세수를 한 아이의 얼굴같은 강물만,
강물만 반짝이면서 내 마음의 빈틈을 스며 들어온다.
내가 미워한 것은 내가 사랑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서서,
새벽 강물로 세수를 하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그대가 미처 보지 못했던 치욕스러운 삶의 눈물을 보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