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삶으로서의 은유

나뭇잎숨결 2009. 2. 2. 06:50

과 돈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우리는 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을 쓰고(spend), 시간을 투자하고(invest), 시간을 절약하고(save), 시간을 낭비하고(waste), 시간을 빌리고(borrow), 시간을 잃어버리고(lose), 시간 예산을 세우고(budget), 시간을 내준다(give). 앞 문장의 ‘시간’ 자리에 ‘돈’을 집어넣어도 하나도 어색한 것이 없다. 은유가 너무 많아서 은유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사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삶으로서의 은유다.

 

 

 

 

멀쩡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 햄 샌드위치가 계산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바늘도 뽑지 않고서 ‘젊은 피를 수혈’하려고 하고, 원래 말을 할 줄 모르는데도 ‘백악관이 요즘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비난하며,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우리나라가 남미가 될까 봐’ 걱정한다. 우리는 왜 그런 은유적 표현을 쓰는 걸까. 그런 은유는 어떤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삶으로서의 은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중상급 영어 회화 및 작문 책으로 읽는 것이다. 은유적이라는 것을 거의 못 느낄 정도로 우리의 언어생활은 은유에 파묻혀 있다. 영어로 된 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면, 다양한 은유적 표현으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은유적 표현’이란 사실 쉽고 평이한 단어들이 사전에 나올 때 그 둘째, 셋째 의미까지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없이 들어 있는 은유적 표현의 예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말과 글은 더욱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두 번째는, 은유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개념을 정교하게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는 법, 그것을 우리의 신체적 활동과 같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합치시키는 법, 그리고 그것을 은유라는 방식으로 더욱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로 확장하고 언어로 표현하여 내는 법,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다. (물론 이것이 ‘체험적 게슈탈트’라는 어려운 말로 설명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 결국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서로가 공유하는 경험을 토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주관과 객관의 중간에 서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삶으로서의 은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과 사람,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인식한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 결국은 머리 속에서 스스로 말을 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언어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삶 그 자체를 산다기 보다는 은유를, 메타포(metaphor)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읽더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철학적 개념이 나오면서 머리가 아파오니, 언어학 전공자나 어려운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당히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읽으면 되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훈스`님은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과학에 재능이 별로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리게 된 것 같아 걱정 중인 박사과정 대학원생. http://blog.naver.com/vanderwaals
책 속 밑줄 긋기은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적 상상력과 수사적 풍부성의 도구이다

은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적 상상력과 수사적 풍부성의 도구-일상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특수한 언어의 문제-이다. (…)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은유가 우리의 일상적 삶―단지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와 행위 ―에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 체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다. - 1장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개념들'

우리 문화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시간은 돈이다>. 예를 들어 전화 통화 단위, 시간제 임금, 호텔 객실료, 연간 예산, 대출금 이자, 그리고 "시간을 봉사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빚을 갚는다고 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관행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새로운 것이어서 모든 문화 안에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관행들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발생했으며, 우리의 기본적인 일상 활동들을 매우 심오한 방식으로 구조화한다. - 2장 '은유적 개념들의 체계성'

당신이 내 아들 사진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을 때, 내가 내 아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당신은 만족해 하면서 내 아들의 사진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얼굴 없이 몸만 있는 내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당신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고 만족하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은 "그런데 그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 우리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으려면―그의 자세나 몸짓보다―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 우리가 얼굴의 관점에서 그 사람을 지각하고 그 지각을 바탕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바로 환유의 관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 8장 '환유'

우리는 일상적인 기술을 할 때, 우리의 목적에 적합한 속성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범주화를 사용한다. 즉 모든 기술은 부각시키고 축소화하고 은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섹시한 금발 미인을 만찬에 초대했다.' '나는 유명한 첼리스트를 만찬에 초대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를 만찬에 초대했다.' '나는 동성 연애자를 만찬에 초대했다' 위의 기술들은 동일한 사람에 대해 다 들어맞을 수 있지만, 각각의 기술은 그 사람의 상이한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당신이 알리고 이 속성들을 모두 갖고 있는 누군가를 "섹시한 금발 미인"이라고 기술하는 것은 그녀가 첼리스트이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사실을 축소화하는 것이고, 그녀가 동성 연애자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 24장 '진리'

작가 소개은유 이론이 다양한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저술한, 조지 레이코프ㆍ 마크 존슨 교수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년생. 언어학과 인지과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다. 진보적 비당파 연구기관인 로크리지 연구소(Rockridge Institute)의 창립 선임 연구원이면서 리처드&로다 골드만 기금 교수로서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국제인지언어학협회 회장, 인지과학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버클리 국제컴퓨터과학연구소의 공동 소장이다. 지은 책으로 <인지의미론>, <시와 인지>, <프레임 전쟁> 등이 있다.

번역본 보기인지언어학 분야의 고전으로 불리는 <삶으로서의 은유>를 다양한 언어로 만나보세요
추천도서은유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계, 은유를 통해 전달되는 진실과 힘!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