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사고, 선택적 망각, 더블스피크, 빅 브라더
윈스턴은 햇볕과 그늘로 얼룩진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트인, 금빛으로 번쩍이는 웅덩이가 나왔다. 왼편으로 나무 밑에는 불루벨 꽃이 만발해 있었다. 대기가 살결에 입맙춤하는 것 같았다. 5월 2일이었다. 어딘지 숲 속 깊은 곳서는 산비둘기가 구슬프게 울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렀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찾아올 수가 있었다....물론 텔레스크린이야 없겠지만, 그러나 어느 곳에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자기 말소리가 녹음된으로써 탄로될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과거의 개조는 '영사'의 중심 교리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오직 그 자료와 기억이 한데 뭉친 것이다. 그리고 당은 그 모든 자료와 당원의 마음속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당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변경시킨다고 해서 특별한 예외의 경우를 인정하는 것을 결코 아니다. 어떤 순간에 필요한 형태로 과거를 재창조했을 때 바로 이 새로운 것이 과거이고, 다른 과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1984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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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년>은 스탈린주의(전체주의)라는 표면구조를 통해 '이중사고', '선택적 망각', '더블스피크(doublespeak)' , '빅 브라더(big brother)' 속에 실존하는, 숨어버릴 수 없는 혹은 죽음을 선택할 자유마져도 박탈당한 고도의 지능적인 감시시스템, 세뇌구조의 사회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이다.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과 같은 '더블스피크(doublespeak)'는 일종의 말장난에 해당된다. 이 말은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처음 사용한 뒤 정치학 용어로 굳어진 것인데, 비판받아야 할 행위에 대해 완곡어법을 사용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가치체계의 전도 inversions of the value hierarchies'를 야기하는 표현법을 뜻한다. 가령 '평화를 위한 전쟁'이나 '폭격이 아닌 공중지원', '고문이 아닌 공격적 심문', '값싸고 질좋은 미국산 쇠고기'와 같은 수사가 여기에 속한다‘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선택적 망각에 따라 만들어진 역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를 지배한 것으로 볼 수 없다.
<1984년>을 스탈린주의가 중심이 된 전체주의의 의장을 통해 정보사회의 판옵티콘을 보여준다. 오세아니아에 속해있는 ‘에어스트립 원’은 영국을 가리키며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도시도 ‘런던’이다. 거기엔 초고층건물이 많고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 요소요소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국가임에 틀림없다. <1984년>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빅 브라더의 내부자나 외부의 해킹에 의하여 개인정보는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Bigbrother is watching you' 이라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여져있고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라는 더블스피크가 존재하는 세상은 오늘날 이중사고의 가치전도속의 판옵티콘의 감옥에 사는 우리와 다를바가 없다.
<1984년>은 오세아니아 사회는 정치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인 동시에 고도의 기술적 전체주의 국가에 속한다. 즉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미래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上程)해 놓은 반 유토피아적 세계의 알레고리에 해당한다. <1984년>은 당대의 정치적 전체주의하의 인간의 운명과 인간성 말살을 그린 것인 동시에 인간이 물품화되어 기계처럼 정형화된 고도의 관리 산업사회시대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넓게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각종 테러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고 좁게는 폐쇄회로, 도청, 감청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1974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개인의 정보를 입수했을 때 이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고도의 사생활 보호안을 만들어 발표한 적도 있다. 우리의 오늘을 X파일의 시대라 한다면, ‘빅브라더’가 존재하는 소설 <1984년>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치적 풍자도, 무의식적 심리상태의 증언도 아니다. <1984년>은 혼돈의 역사 속에 머리카락 하나도 숨길 수 없는 우상의 시대임을 예언한 조지 오웰의 예지몽이자, 주인공 윈스턴의 희망처럼 인간적인 인간으로 대변되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사회로의 복원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